세상 참 무섭게 변하지만 변하지 않는 게 있다. 헬스장이나 운동하기 좋게끔 만들어 놓은 공원이 1년에 두 번씩 붐비는 현상이다. 새해엔 새로운 1년을 위해, 그리고 초여름엔 노출 계절 여름에 대비하기 위해 사람들이 확 불어난다.
같은 살이라도 남자와 여자는 빼고 싶은 우선순위가 다르다. 남자는 대체로 뱃살부터 빼고 싶어 하고 여자는 엉덩이 주변 살부터 덜어내고자 한다. 하지만 좋은 일은 언제나 더디 오는 법. 바람과 달리 이곳 살이 가장 안 빠진다. 한시 바삐 멋지고 날씬한 주인공이 되고 싶은데 가장 빼고 싶은 곳이 가장 안 빠지니 포기하기 일쑤다. 왜 이곳 살들은 유난히 ‘저항’할까. 이유가 있다.
문명이 아닌 야생에서는 내일 일을 알 수 없다. 언제 어디서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모르기에 먹을 게 보이면 일단 먹어 두는 게 최선이다. 야생동물들이 생각 이상으로 많이 먹는 이유다. 인류도 마찬가지였다. 인류 역사 600여만 년 중 정착생활을 시작한 게 고작 1만여 년 전이니 우리 또한 오랜 시간 이런 방식으로 살아왔다. 지방만 전문적으로 보관하는 지방세포가 생긴 것도 이래서다. 가지고 다니면 부패하기 쉽고 빼앗길 수도 있기에 몸속에 저장한 것이다.
문제는 어디에 저장해야 하는가이다. 아무 데나 보관할 수 없다. 움직이는 데 방해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모든 동물에겐 자기만의 지방 보관소가 있다. 족제비들은 꼬리에 지방을 보관한다. 설치류를 찾아 날렵하게 이동하고 좁고 긴 굴을 수없이 탐색하려면 몸통이 날씬해야 하기 때문이다. 족제비나 담비 꼬리가 겨울철 목도리로 인기 만점인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지방이 많아 털 품질이 최상인 것이다. 사막의 낙타는 아무리 먹어도 날씬한 다리와 몸매를 자랑하는데, 모든 지방을 등에 있는 혹에 보관해서다.
우리는 어떨까. 피부 아래에 보관한다. ‘피하(皮下) 지방’이라는 말 자체가 지방이 피부 아래에 있다는 뜻인데 몸통 중심 부근이 1차 저장소다. 진화생물학자인 캐럴라인 폰드에 의하면 남자는 배 주위, 여자는 엉덩이와 그 주변이다. 사냥할 때 가장 방해가 덜 되는 곳이자 위기 상황 때 부하가 많이 걸리는 심장에 신속하게 에너지를 공급할 수 있어서다. 그래서 뱃살이 가장 먼저 오르고 가장 늦게 빠진다.
여자는 왜 배가 아니라 엉덩이일까. 배에 지방이 많으면 열이 빠져나가지 못해 태아에게 해로울 수 있다. 그래서 엉덩이 살이 가장 먼저 들어서고 가장 나중에 빠지는데 가임기가 지나고 나이가 들면 이곳에 몰려 있던 살들이 대이동을 시작해 뱃살로 ‘정착’한다. 남자들은 여성호르몬이 증가하면서 가슴에 ‘제2의 기지’를 마련한다. 이런 오랜 이유를 모르고 단박에 빼려다 보니 좌절하는 것이다. 좋은 것은 늦게 온다는 마음이면 좀 더 쉬워지지 않을까 싶다.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