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로한 환자들이 주무시다 갑자기 돌아가시는 경우가 있다. 이런 이야기를 하면 어떤 분들, 특히 나이 드신 분들은 내심 부러워하는 반응을 보이기도 한다. 아프지 않고 고생하지도 않고 편안하게 세상을 뜨셨으니 다행스러운 일이라고 생각하기도 한다.
하지만 자식 입장에서 생각해 보면 부모님이 그렇게 돌아가시면, 작별인사를 할 시간이 없다. 사랑하는 사람들이 모여서 임종을 지키지도 못하게 된다. 돌아가시기 전 가족들끼리 같이 식사를 하거나 여행을 가는 일도 불가능하다. 그저 다음 날 자고 일어나 보니 부모님이 돌아가셨다는 소식으로 임종을 맞는다. 부랴부랴 달려가 봐야 그저 흰 천에 덮여 있는 싸늘한 시신만 접할 뿐이다. 후회가 밀려오게 된다. 자다가 편안하게 죽으면 본인은 편할지 몰라도 남겨진 가족 입장에서는 너무 힘들다.
그러니 달리 생각해 보면, 자녀들을 위해서는 자다가 갑자기 죽어서는 안 되고 어느 정도 아프다가 자식들에게 시간적 여유를 좀 주고 죽어야 한다는 결론도 가능하다. 자식이 부모를 좀 보살피다가 돌아가시는 것이 자식 입장에서는 더 나을 수 있다.
이 또한 쉽지 않다. 병든 부모의 대소변 받아내고 24시간 옆에서 보호자 노릇하면 처음 며칠은 당연한 자식의 도리이니까 다들 잘한다. 하지만 긴 병에는 효자가 없다. 그렇게 몇 달의 시간이 지나면 자식들이 지치게 된다. 속된 말로 정 떼는 시간이다. 그 시간이 너무 길어지면 서로 간에 괴롭다. 부모도 괴롭고 자식도 괴롭다. 좋은 모습으로 떠나야 하는데, 서로 간에 안 좋은 기억이 더 크게 남게 되기 때문이다.
그러니 참 어렵다. 자식 입장에서 보면 돌아가시기 전에 어느 정도 효도도 해야 하고 그렇다고 그 기간이 너무 길어져 힘들어서도 안 된다. 아쉬움이 남으면서 너무 아쉬워서도 안 되고, 슬프지만 헤어 나올 수 없을 정도로 너무 슬퍼서도 안 된다. 부모님이 어느 정도 고생을 하다 내가 마음의 준비가 되었다 싶을 때 딱 돌아가시는 게 자식에게는 좋다. 사람이 언제 어떤 모습으로 떠날지는 아무도 모르는데도 말이다.
우리 모두는 어느 정도 자기중심적이다. 다들 그렇게 세상을 바라보기에, 내 뜻대로 안 된다고 인생이 힘들다고 하는 게 아닐까 생각해본다. 내가 안 아프고 자다가 편하게 죽는 일도 남겨지는 누군가에게는 고통스러운 일이 되기에 잘 죽는 일은 그렇게나 어려운 일이 아닐까 싶다. ‘자기중심성을 벗어나는 일’과 ‘이별을 준비할 약간의 시간’이 좋은 죽음의 필요조건 아닐까 생각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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