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절이 익숙한 세대[이재국의 우당탕탕]<56>

  • 동아일보
  • 입력 2021년 7월 23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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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국 방송작가 겸 콘텐츠 기획자
이재국 방송작가 겸 콘텐츠 기획자
그 옛날 ‘아이 러브 스쿨’이 유행하던 시절에는 초중고 같은 학교를 다닌 친구에게 ‘인연이 많은 동문’이라는 호칭을 붙여줬다. 같은 학교를 다니고, 같은 반이 되고, 심지어 ‘짝꿍’까지 하게 되면 그건 정말 큰 인연이었고, 수십 년이 흘러도 쉽게 잊혀지지 않았다. 특히 초등학교 때 짝꿍은 영원한 인연의 고리처럼 우리를 따라다녔다.

지금은 소셜미디어가 발달해 인연을 맺기 쉬워졌다. 잘 알지 못하는 사람, 심지어 한 번도 본 적 없는 사람과도 친구가 될 수 있고 그 사람과 메시지를 주고받으며 친한 사이처럼 지낸다. 그 사람 생일에 축하 메시지도 보내고 그 사람이 힘든 일이 있을 때는 힘내라고 응원도 해주는 사이. 어쩌면 40년도 넘은 우정이지만 요즘은 연락도 잘 안 하는 초등학교 때 짝꿍보다 소셜미디어에서 만난 친구가 더 친근감이 느껴질 때가 많다.

우리 어릴 때는 인연을 참 소중하게 여기고, 인연을 지키려고 노력했다. 그 시절에는 같은 동네 살거나 같은 학교가 아니면 친구가 되기 힘들었다. 중·고등학교에 가서는 펜팔을 하며 다른 지역에 있는 친구, 심지어 미국에 사는 사람과도 친구가 될 수 있었지만 아무튼, 그 시절에는 어떻게든 나와 관계가 생기고 인연이 생긴 사람은 끝까지 가야 하는 운명인 줄 알았다. 그런데 중학생이 된 딸의 친구들을 보면 요즘 세대는 인연을 참 쉽게 생각하고 또 인간관계에서 ‘손절’이라는 말을 써가며 참 쉽게 이별하는 것 같다. 초등학교 친구들은 초등학교를 졸업하면 대부분 손절하고, 학원에서 만난 친구들도 학원을 옮기면 손쉽게 손절한다. 사람 관계에서 손절이라는 말을 쓰다니, 인연을 너무 쉽게 생각하는 것 같아 아쉽지만 한편으로는 부럽기도 했다. 살다 보니 손절을 못 해서 더 큰 손해를 보는 경우도 왕왕 겪어봤기 때문이다.

언젠가 친구들과 인생의 나룻배에 관해 논쟁을 한 적이 있었다. 어떤 사람이 길을 가다가 물살이 빠른 강을 만나게 됐고, 강이 워낙 깊어서 헤엄쳐 건너기 힘들었다. 마침 근처에 나룻배 한 척이 있어서 날이 저물기 전 그 나룻배를 타고 강을 건너갈 수 있었다. 그는 나룻배가 너무 고마웠다. 그래서 나룻배를 등에 짊어지고 길을 갔다. 그런데 무거운 나룻배 때문에 속도도 안 나고 힘이 들어서 나룻배를 버리려고 했더니 사람들이 그에게 손가락질을 했다. “나룻배 덕분에 살았으면서 이제는 힘들다고 버리려 하다니, 쯧쯧.” 그는 고민했다. 나룻배를 버리기도 미안하고, 그렇다고 나룻배를 계속 짊어지고 가기도 힘들고. 그는 어떻게 해야 할까, 그리고 만약 나룻배가 인생에서 만난 인연이라면 어떻게 해야 할까.

어릴 때는 내가 아무리 힘들더라도 나룻배를 버리면 안 된다는 생각이었다. 그게 의리고, 내 인생에서 인연을 대하는 자세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요즘은 생각이 좀 달라졌다. 일부러 만들고 억지로 잡는 건 인연이 아니다. 그리고 상대방 입장도 들어보고 배려해 줄 필요가 있다. 결코 나만 편하게 살겠다는 게 아니다. 인생은, 아니 인연은 내 마음대로 되지 않는다. 그러니까 아주 오래된 노랫말처럼 렛잇비(let it be). 그냥 흘러가는 대로 내버려둬도 인연이면 이어지고 연결될 것이요, 인연이 아니면 자동으로 떠날 것이다.

#인연#손절#나룻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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