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야가 재난지원금으로 소득하위 88%에 1인당 25만 원을 지급하기로 23일 합의했다. 고소득자를 대상으로 한 신용카드 캐시백 혜택은 규모를 축소해 유지키로 했다. 또 소상공인 지원 예산도 1조4000억 원 증액해, 2차 추가경정예산은 33조 원에서 34조9000억 원으로 늘어나게 됐다.
정부는 당초 소득하위 70%에 재난지원금을 지원한다는 방침이었으나 여당은 당정협의 과정에서 이를 80%로 올렸다. 이후 송영길 더불어민주당 대표와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가 전 국민 재난지원금 졸속 합의 및 번복 등의 우여곡절을 거친 끝에, 최종적으로 88%로 결정하게 된 것이다.
이 과정에서 재난지원금의 기준이 왜 70%, 80%, 88%가 돼야 하는지에 대한 합리적이고 납득할 만한 설명은 없었다. 오직 정치공학적 계산이나 흥정에 따라 기준선이 정해졌다. 지급 대상에서 제외되는 12% 국민들 사이에서 도대체 기준이 뭐냐는 비판이 나오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야당도 비판받아 마땅하다. 전 국민 지원금이 아니라고 할지 모르지만 규모면에서 88%는 100%와 별 차이가 없다. 코로나 4차 대유행이 거세지면서 정부는 당초 2주로 정했던 수도권 거리 두기 4단계를 2주 더 연장하기로 했다. 전염력이 높은 델타 변이의 비중이 커지면서 코로나가 언제 꺾일지는 극히 불투명한 상태다. 소비 진작 성격의 재난지원금은 이 같은 방역 상황과 조화를 이루기 어렵다. 고소득자에 대한 신용카드 캐시백도 마찬가지다.
코로나가 장기화되면 재정 소요는 더 늘어날 수밖에 없는데, 이를 뒷받침해야 할 나라 곳간은 급속도로 부실해지고 있다. 국제신용 평가사 피치는 그제 국가채무를 한국의 신용 등급에 부정적 영향을 줄 수 있는 제1의 위험 요인으로 꼽았다. 국가채무는 2017년 약 660조 원에서 급속히 늘어 올해 1차 추경 기준으로 약 966조 원에 달한다. 올해 경제성장률 4% 달성 가능성이 낮아지고, 세수 확충도 기대하기 힘든 상황이다. 재정은 한 번 악순환에 빠져들면 그 굴레에서 벗어나기가 불가능에 가깝다는 점을 잊어선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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