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3년 전만 해도 “‘노오력’을 하라”는 말이 유행처럼 쓰였다. 청년층이 겪고 있는 실업난과 자산 격차의 원인을 기성세대는 청년들의 ‘노력 부족’에서 찾는다고 해서 나온 말이다. 기성세대가 청년들을 핀잔하는 말투를 비꼬아 ‘노력’을 ‘노오력’으로 바꾼 표현이다.
하지만 언제부턴가 이 ‘노오력’이란 단어가 자취를 감췄다. 일상생활은 물론이고 인터넷 커뮤니티에서도 요즘 이 표현을 쓰는 이들은 거의 없다. 한순간에 ‘노오력’이 사라진 배경에는 청년들의 아픔과 눈물이 서려 있다.
그 배경에는 ‘청년 스스로의 노력만으로는 기성세대와의 간극을 좁히기 힘들어졌다’는 인식이 있다. 정부는 요즘 계속 “현재가 최고점이니 부동산 투자에 유의하라”고 당부하지만 부동산 가격은 끝을 모르고 오르고 있다. 부동산 투자로 ‘개천에서 막차 타고 용이 됐다’는 과장들도, 보증금 500만 원으로 신혼살림을 시작해 서울 자가 보유자가 됐다는 부장들도 자산 형성 기회를 잃은 후배들에게 무용담을 말하기 머쓱해졌다.
자산 격차를 줄이려면 일자리라는 최소한의 토양이 마련돼야 하는데 이마저도 쉽지 않다. 6월 구직 단념자는 통계 작성 이후 가장 많은 58만3000명으로 집계됐는데 이 중 절반가량(46.8%)이 20, 30대였다. 일자리를 구하려고 취업시험을 준비하는 청년층(15∼29세)도 약 86만 명으로 역대 최대 규모였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4차 대유행으로 경기 불확실성이 다시 커지며 청년들이 일자리를 구하기는 점점 어려워지고 있다.
선배 세대들이 부동산으로 자산을 불리는 모습을 본 청년들은 대안으로 주식과 가상화폐 시장에 눈을 돌렸다. 하지만 가상화폐 시세는 최근 연중 최고점에 비해 반 토막 났고 주식시장은 보합 상태로 투자자들을 ‘가두리 양식’ 중이다. 청년들은 주식이나 비트코인에 더 투자하진 못하고 그렇다고 시원하게 처분하지도 못한 채 옴짝달싹 못 하고 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노오력’ 대신 애초부터 부자가 될 금수저는 정해져 있었다는 ‘수저 계급론’이 다시 회자된다.
정부도 그간 청년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여러 방책을 내놨지만 결과는 신통치 않았다. 문재인 정부는 최저임금을 올려 소득 격차와 경제적 불평등을 해소한다는 소득주도성장을 들고 나왔지만 인건비 부담을 느낀 사업주들이 일자리를 줄이는 결과를 낳았다. 최근 한 유력 대선주자는 청년에게 연 200만 원의 기본소득을 주는 방안을 청년문제 해결책으로 내걸었다. 하지만 청년들에게 현금을 주려면 재정에 부담이 갈 수밖에 없고, 그 재정 부담은 언젠가 지금의 청년들이 다시 짊어져야 한다는 사실은 굳이 강조하지 않는다.
청년들이 다시 ‘노오력’이라도 하려면 노력의 결실로 무언가를 얻을 수 있는 환경이 만들어져야 한다. 노력의 토양은 결국 소득을 얻을 수 있는 일자리와 그 소득을 바탕으로 자산을 형성할 수 있는 안정된 자산시장이다. 정부와 정치권이 포퓰리즘식 현금 살포에 집중한 채 청년문제의 본질을 외면하면 미래 청년세대에게는 노력 자체가 무의미한 단어가 될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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