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산 아이돌’ 성공은 K팝의 넓은 저변에서 나온다[동아시론/이동연]

  • 동아일보
  • 입력 2021년 7월 27일 03시 00분


코멘트

새 주류 된 BTS, 팝시장 대안 떠오른 K팝
차별적 콘텐츠, 글로벌 팬덤의 합작품
‘세대 공략형’ 팝, 소셜미디어 만나 날개
경쟁 과하면 K팝 스타 꿈꾸는 10대 희생돼
윤리적 성찰에 힘쓰고 문화민족주의 벗어나야

이동연 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
이동연 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
K팝은 현재진행형이며 새로운 역사를 쓰고 있다. 그 최전선에 방탄소년단(BTS)이 있다. 빌보드 차트 핫100에서 무려 7주간 1위를 차지한 BTS의 ‘버터’를 밀어낸 곡은 이들의 신곡 ‘퍼미션 투 댄스’였다. 자기 곡으로 싱글 차트 1위를 밀어낸 그룹으로는 비틀스, 보이즈 투 멘 등에 이어 다섯 번째다. 이들은 10개월 2주 만에 ‘퍼미션 투 댄스’를 포함해 5곡을 1위에 등극시켰다. 팝의 황제 마이클 잭슨 이후 처음이다.

BTS는 K팝의 글로벌 위상을 적어도 두세 단계 높인 현존 최강의 ‘문화적 우세종’이다. 전 세계 팝 시장의 주류로 편입한 게 아니라 새로운 주류를 만들었다. 미국 주요 음악 시상식과 쇼 프로그램 섭외는 BTS와 그 외로 구분된다. BTS를 배출한 K팝은 팝 시장에서 하나의 장르가 됐고 위기에 처한 팝 시장의 대안이 됐다.

그렇다면 이 위대한 팝 밴드가 K팝의 모든 것을 대변하는가. 물론 그렇지는 않다. K팝에는 BTS만 있는 게 아니다. NCT, 엑소, 슈퍼엠, 블랙핑크, 트와이스, 레드벨벳, 에스파 등 동시대 K팝 그룹들의 글로벌 인지도는 깊고 넓다. 걸그룹 블랙핑크의 유튜브 구독자 수는 6340만 명으로 BTS보다 900만 명가량 더 많다. 요즘 글로벌 커버댄스의 대세는 트와이스와 에스파다. 전 세계 K팝 팬의 커버댄스에 등장하는 노래는 매우 다양해서, 우리도 잘 모르는 곡들이 커버댄스에 선곡된다.

미국 워싱턴포스트는 7월 17일자 ‘K팝은 어떻게 세계를 정복했나’라는 기사에서 K팝의 성공 요인을 다음과 같이 언급했다. 중독성 강한 노래, 특색 있는 안무, 화려한 뮤직비디오, 헌신적인 팬덤, 그리고 최적화된 소셜미디어. 요약하자면 K팝의 경쟁력은 차별화된 콘텐츠 제작, 충성도 높은 글로벌 팬덤, 강력한 미디어 플랫폼의 합작에서 나온다.

위키피디아에 따르면 1996년 H.O.T. 데뷔 이래 지금까지 아이돌 그룹으로 데뷔한 팀은 대략 450팀 정도가 된다. 2014년 한 해에만 43팀이 데뷔했다. 어쩌면 BTS와 블랙핑크의 성공은 K팝의 넓은 저변에서 나온 것인지도 모른다. 10대 초반 연습생으로 선발돼 오랜 합숙을 통해 완성도 높은 노래와 춤을 만들어 팝 시장에 선보이는 제작 시스템은 전 세계에서 한국이 유일하다. 10대를 위한 맞춤형이자 완성형 아이돌을 마다할 글로벌 팬은 아마 없을 것이다. 글로벌 K팝 팬들의 자발적인 ‘K팝 놀이’는 결국 K팝을 하나의 세계적 현상으로 재생산한다. K팝은 J팝보다 훨씬 완성도가 높고 글로벌 소비에 적합하게 사전 제작되어 전 세계에서 거의 유일하게 세대 공략형 팝음악을 대량 생산했다. 여기에 유튜브와 인스타그램, 페이스북 같은 소셜미디어는 국경 없는 K팝, 지속 가능한 K팝 전성기를 만든 플랫폼이다.

여기에서 딜레마가 생긴다. K팝의 지속 가능한 성공 조건들은 역설적으로 급격한 위기의 징후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장기 합숙과 강도 높은 훈련으로 만들어지는 아이돌 제작 시스템은 독특한 예능 유전자를 가진 한국의 아이돌조차 견뎌내기 힘들 정도의 극한 에너지를 요구한다. 경쟁이 치열한 제작 시스템에 과부하가 걸리면 결국 희생자는 K팝 스타를 꿈꾸는 글로벌 10대 소년, 소녀들이 될 것이다. K팝은 빛나는 팝 아이돌의 탄생과 희생을 정당화하는 윤리적 무감각의 경계 사이에서 아슬아슬한 줄타기를 하고 있다. K팝의 글로벌 팬덤은 역으로 국지적으로 강한 문화민족주의를 생산한다. K팝은 이미 탈국적화돼 있는데 정부와 언론, 그리고 일부 정치인들은 K팝을 한민족 최고의 히트상품으로 자랑한다.

K팝은 소셜미디어에 큰 덕을 입었지만, 그 안에 지나치게 종속돼 많은 비용을 지출하고 있다. K팝이 소비되는 글로벌 미디어 플랫폼은 K팝의 지속 가능한 자산의 성패를 쥐고 있다. 콘텐츠는 K팝, 유통은 유튜브라는 구도는 지금까지는 좋은 협력 관계를 보여주었지만 그 관계는 영원할 수 없고, K팝의 자발적 확장에 큰 부담을 주는 게 사실이다. K팝이 브릿팝이나 라틴팝처럼 글로벌 팝 시장에서 지속 가능한 발전을 이루려면 결국 제작 시스템의 윤리적 성찰, 자생적인 미디어 플랫폼 구축, K팝이 한국의 팝이라는 생각을 그냥 잊어주는 ‘쿨’한 문화 감각이 필요하지 않나 싶다.

#동아시론#이동연#k팝#아이돌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