따뜻한 눈길[왕은철의 스토리와 치유]<203>

  • 동아일보
  • 입력 2021년 7월 28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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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살고 있는 시대가 암울하고 절망적이어서 더욱 빛을 발하는 생각들이 있다. 양명학 시조인 명나라 시대 철학자 왕수인, 그의 생각이 그러하다. 특히 인간 본성에 대한 그의 절대적인 신뢰는 눈이 부실 정도다.

왕수인은 인간에 관한 이야기부터 시작한다. 그에 따르면 우리가 물에 빠지는 아이를 볼 때 “두려워하고 근심하며 측은해하는 마음”을 갖게 되는 것은 아이와 한 몸이 되기 때문이다. 태생적인 공감능력을 일컫는 말이다. 그는 자신의 생각을 조금 더 밀고 나간다. “새가 슬피 울고 짐승이 사지(死地)에 끌려가면서 벌벌 떠는 것을 볼 때” 우리 안에 참기 어려운 마음이 생기는 것은 우리가 새나 짐승과 한 몸이 되기 때문이다. 그럴 수도 있겠다. 그들도 우리처럼, 우리도 그들처럼 동물이니까.

이것이 끝이 아니다. 그는 풀이나 나무가 잘린 것을 보면 “가여워서 구제하고 싶은 마음”이 생긴다면서 그럴 때 우리는 풀이나 나무와 한 몸이 된다고 말한다. 그의 말을 들으면 정말로 우리 안에 그러한 연민의 감정이 있을 것만 같다. 그의 사유는 무생물을 향할 때 최고조에 이른다. 기왓장이나 돌이 깨진 것을 보면 우리 안에 “애석하게 여기는 마음”이 일어나는데 그럴 때 우리는 기왓장이나 돌과 한 몸이 된다. 그러니까 세상에 존재하는 죽어가고 잘리고 깨진 모든 것들이 우리와 한 몸이 되는 셈이다. 인간은 누구나, 정말이지 누구나 본래는 이처럼 선한 존재라는 거다.

이보다 더 따뜻하고 낙천적으로 세상을 품는 눈길이 또 있을까 싶다. 서양의 화려한 환대 이론이나 타자 이론도 우리가 인간만이 아니라 동물, 새, 나무, 심지어 기왓장이나 돌과도 한 몸이라는, 르네상스 시대에 나온 동양의 이론 앞에서는 초라하고 창백해진다. 과장되고 과잉된 사유 같지만 인간 중심으로 살다가 망가진 생태계를 생각하면 과장이나 과잉이 아니라 일종의 처방처럼 느껴진다.

#왕수인#인간 본성#선한 존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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