곽영훈 세계시민기구(WCO) 대표(78)는 10대 초반부터 태권도를 배웠고 팔순을 눈앞에 둔 지금도 도장에서 품세와 발차기, 주먹지르기, 격파로 수련하고 있다. 그는 몸과 마음은 하나로 연결돼 있고 심신의 건강을 동시에 끌어올리기에는 태권도가 제격이라고 강조한다.
서울 종로구 견지동 청도관 본관에서 처음 태권도를 접했다. 집 바로 옆이 청도관이었다. 형이 먼저 시작하자 따라 배웠다. 곽 대표는 “그땐 특별하게 즐길 스포츠가 없었다. 태권도는 운동이 되기도 했지만 사범을 존경하는 자세로 체계적으로 무술을 익히며 도(道)를 배웠다”고 말했다. 당시엔 개인 수양으로 태권도를 했다. 그는 “사범들은 내게 호국정신과 호연지기를 불어넣었다. 누구하고 싸우는 게 아니라 내 몸을 수양하는 것이다. 그 정신이 좋았다”고 했다. 곽 대표는 무엇보다 태권도를 통해서 몸과 마음은 하나라는 것도 배웠다.
“태권도 품세든 발차기든 내 머릿속에서 하겠다고 마음먹은 뒤에야 행동으로 나타난다. 순간적인 판단에 몸이 따라주지 않으면 상대를 공격하거나 방어할 수 없다. 세상 모든 게 마찬가지다. 마음을 먹어도 결국 몸으로 실행해야 뭐든 할 수 있다. 생각만 가지고는 이뤄지는 게 없다. 몸이 건강하면 마음도 건강하다. 태권도를 통해 그것을 체득했다.”
평생 태권도 수련을 멈추지 않았다. 미국 매사추세츠공대(MIT·건축학), 하버드대(정책학) 유학 시절에는 체육관에 태권도 클럽을 만들어 세계적인 수재들을 직접 지도했다. 1960년대 초 한국 학생이 일본 혹은 중국 사람으로 인식되던 시기였다. 태권도로 한국을 알렸다.
태권도는 그에게 좋은 기회도 가져다줬다. 1964년 미국 뉴욕에서 열린 만국박람회를 지켜봤는데 ‘아, 이런 국제 행사로 나라가 발전하는구나’ 하는 아이디어를 얻었다. 그해 일본에서 열린 도쿄 올림픽을 멀리서 지켜보며 ‘한국도 올림픽을 개최해야 발전할 수 있다’는 생각을 굳혔다. 올림픽 개최를 계기로 인프라를 잘 갖추는 게 도약의 발판이 될 수 있다는 판단이었다. 그리고 1972년 뮌헨 올림픽을 직접 참관했다. 마음먹은 것은 행동으로 옮기는 태권도 정신을 실천했다. MIT와 하버드대에서 태권도를 지도하며 모아둔 돈이 있어 가능했다. 그는 그곳에서 “시내 곳곳을 지하철로 연결하고, 쓸모없을 것 같은 공간도 공원으로 활용하는 지혜를 직접 보고 왔다”고 했다.
곽 대표는 한국으로 돌아온 뒤 홍익대 도시계획학과 학과장으로서 고 구자춘 서울시장에게 서울 올림픽 개최 프로젝트를 제안했다. 서울 잠실 일대에 올림픽종합경기장 및 공원을 짓는 밑그림을 만들어 제시했다. 지하철 2호선도 그곳을 통과하도록 조언했다. 1975년 사람과환경그룹을 만든 그는 1988년 서울 올림픽 기간시설 건설계획은 물론이고 1993년 대전 엑스포 유치 마스터플랜, 2012 여수 엑스포 기획 및 설계 등에 기여했다. WCO는 1988년 서울 올림픽의 성공적인 개최를 국제 네트워크로 지원하기 위해 1987년 창설했고, 지금은 실크로드 도시들을 네트워크로 연결해 친환경적 도시 건설을 유도하고 있다.
곽 대표가 이렇게 활기차게 활동하는 원동력에 태권도가 있었다. 태권도에서 배운 호국정신을 국가번영정신으로 발전시켰고, 미국 유학 시절부터 국가 건설 프로젝트를 준비해 실행했다. 지금도 최소 주 1회는 WCO 태권도장에서 수련하고 있다. 먼저 복식호흡과 명상으로 마음을 가다듬은 뒤 본격적인 신체 단련에 들어간다. 정신 수양이 먼저이기 때문이다.
곽 대표는 평소엔 걷기와 주변 청소로 건강을 관리한다. 집(서울 신당동) 근처 매봉산과 남산을 매일 오른다. 40여 년 전부터 하고 있는 ‘남산소나무 살리기’도 그에겐 운동이다. 남산을 걷다 아카시아나무가 너무 빨리 자라며 소나무의 성장을 방해하는 것을 보고 아카시아나무 가지치기를 하고 있다. 매일 하는 집 주변 서울성곽 청소도 그의 건강을 지켜주고 있다. 가지치기와 청소의 운동량이 상당하다. 모두 태권도에서 배운 봉사정신에서 비롯됐다. 태권도 9단인 곽 대표는 “이제 뉴노멀 시대다. 시시각각으로 바뀌는 시대 변화에 잘 적응하려면 흔들리지 않는 마음가짐이 중요하다. 심신을 단련시키는 태권도가 도움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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