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펜싱 사브르 선수들은 도쿄 올림픽을 앞두고 일명 불빛터치 스텝 훈련을 줄기차게 반복했다. 1∼2m 전방 목표지점에서 불이 들어오면 잽싸게 펜싱 스텝으로 앞으로 나가 손으로 터치한 뒤 돌아오는 동작을 1회에 15초 동안 반복한다. 3개의 불 중 2개(빨간색, 주황색)가 들어오면 빨간색을 터치하는 훈련도 했다. 빠른 발과 순간적인 판단력을 키우기 위한 훈련이다.
▷도쿄 올림픽 펜싱 남자 사브르 단체전에서 한국이 9년 만에 정상에 오르자 ‘발 펜싱’이 화제가 되고 있다. 키가 큰 것은 물론 팔도 긴 데다 손기술까지 좋은 유럽선수들을 상대하기 위해 개발한 한국식 펜싱이 우승 원동력이기 때문이다. 한국은 2012년 런던 때 펜싱 사브르에서 금메달 2개를 획득해 세계를 놀라게 했다. 당시 활약한 발 펜싱 1세대인 김정환 구본길 등으로 구성된 남자 대표팀이 다시 금메달을 걸며 그 진가를 보여준 것이다.
▷세계 최고의 기량을 갖춘 선수들과의 경쟁에서 체격의 열세를 극복하는 방법은 아무도 생각하지 못한 기술, 그리고 이를 뒷받침할 수 있는 체력이다. 2002년 한일 월드컵 때 4강 신화의 원동력인 한국축구대표팀 파워 프로그램도 결국 유럽 선수들보다 더 많이 뛰게 만든 체력 프로그램이었다. 상대보다 빨리 움직이기 위해 한국 펜싱 대표팀은 강도 높은 체력훈련과 함께 스텝 훈련을 밥 먹듯이 했다.
▷수영 자유형 남자 100m에서 아시아선수로 69년 만에 최고인 5위에 오른 황선우는 빠른 팔 젓기로 세계적인 선수들과 대등한 레이스를 펼쳐 주목받았다. 역시 큰 키와 근육질 몸매의 서양 선수들이 파워를 과시하는 100m에서 체격적인 열세를 극복한 방법이 빠른 팔 젓기였다. 황선우는 이날 우승한 미국의 케일럽 드레슬보다 약 10회 더 팔을 회전시켰다.
▷황선우는 어려서부터 스피드 강화를 위해 자신만의 영법을 진화시켰다. 황선우는 오른쪽으로 숨을 쉰 다음 오른팔을 앞으로 더 길게 밀어 넣어 물을 세게 당겨 추진력을 얻는 ‘엇박자 영법’이란 리듬을 유지하며 팔 젓기를 빠르게 했다. 그를 지도한 이병호 서울체고 감독은 “리듬이 깨지지 않고 팔 스트로크를 빠르게 하는 게 선우만의 기술”이라고 했다. 리듬 없이 무작정 팔만 빨리 회전시킬 경우 오히려 추진력을 잃을 수 있다.
▷세계 최고가 되기 위해서는 남이 흉내 내기 힘든 자신만의 강점이 있어야 한다. 남자 펜싱 사브르 대표팀은 한발 빠른 발로 세계를 정복했다. 황선우는 한 템포 빠른 팔 젓기로 가능성을 보였다. 고등학생 황선우는 아직 체력적으로도 미완성이다. 가능성이 많이 남아있다는 얘기다. 황선우가 3년 뒤 파리에서 남자 펜싱 대표팀처럼 최정상에서 활짝 웃길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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