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빛 아래 바람에 흔들리는 낙엽 사이로 앙상한 나뭇가지들이 보인다. 깊은 산중 골짜기에 자리 잡은 초가에서 홀로 책 읽던 선비가 문득 인기척을 느낀 듯 창밖 동자(童子)에게 고개를 돌린다. “이상하구나. 동자야 이게 무슨 소리냐?” 마당에 선 동자가 손으로 허공을 가리키며 선비에게 답한다. “별과 달은 희고 맑고 은하수는 하늘에 있는데, 사방에 사람 소리는 없습니다. 소리는 나뭇가지 사이에 있습니다.” 이에 선비는 말한다. “아 슬프도다! 이것이 가을의 소리로다.”
28일 서울 용산구 국립중앙박물관의 ‘고 이건희 회장 기증 명품전’에 걸린 단원 김홍도(1745∼1806)의 추성부도(秋聲賦圖)를 묘사한 글이다. 단원이 세상을 뜨기 한 해 전 중국 송나라 문인 구양수(1007∼1072)의 시(추성부)를 그림으로 옮긴 작품이다. 어설피 떠오른 하얀 달과 앙상한 나무, 흔들리는 낙엽이 함께 어우러져 전체적으로 처연한 느낌을 준다. 거장이 자신의 파란만장했던 일생을 회고하며 인생무상의 서정을 한 폭의 수묵화에 압축한 듯하다. 엄습한 팬데믹의 여파 때문일까. 마스크를 쓴 관람객들이 겸재의 인왕제색도와 더불어 전시장 왼쪽 벽면에 나란히 걸린 추성부도 앞에서 한참을 서성였다.
이 작품을 보면서 문득 올해 1월 말 국립중앙박물관 특별전에서 공개된 추사 김정희(1786∼1856)의 세한도(歲寒圖)가 떠올랐다. 메마른 붓질로 쓱쓱 그려낸 엄동설한 속 소나무와 외딴집은 추성부도의 정서와 맞닿아 있다. 추사가 그의 인생 말년을 보낸 제주도 귀양살이 때 그린 작품이다. 사랑하는 가족들과 떨어져 홀로 겨울을 보내야 했던 작가의 쓸쓸한 감흥이 전해진다.
인간은 죽음 앞에 섰을 때 겸손하고 진실해진다는 걸 두 작품은 여실히 보여준다. 넘치거나 과한 부분 없이 담백하다. 사실 단원은 굵고 거침없는 선부터 철선묘(鐵線描·필치의 변화 없이 똑같은 굵기로 가늘게 긋는 기법)에 이르기까지 온갖 기교에 능한 천재 화가였다. 그런 그가 추성부도에서는 기교를 최대한 자제하고 철저히 자신의 내면을 표현하려고 노력했다. 한국미술사를 전공한 이수미 국립광주박물관장은 “추성부도는 붓질부터 색상 표현까지 단원의 기존 작품과는 다르다. 인생의 조락(凋落)을 맞은 단원이 자신의 마음을 그려낸 것”이라고 평했다. 눈에 덮인 네 그루의 나무와 집 한 채만 그린 세한도는 추성부도보다 핵심만 더 솎아낸 느낌이다.
그런데 세한도의 쓸쓸함은 조금 다르다. 고목의 힘찬 가지와 독야청청한 솔잎은 어떤 어려움도 헤쳐 나가리라는 강한 의지로 다가온다. 실제로 세한도를 감상한 청나라 문인 조무견(?∼1853)은 “푸르름이 동심(冬心)을 품고 꿋꿋이 서리와 눈에 굽히지 않네”라는 감상 평을 남겼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 사태로 힘겨운 우리들에게 추사가 건네는 희망의 메시지가 아닐까. 추성부도에 담긴 단원의 겸손한 절제미 역시 걸음을 잠시 멈추고 각자의 삶을 되돌아 볼 것을 청하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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