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거 때와 정부 출범 후가 다른 대선공약
질병청 승격 불구 방역 사령탑 기능엔 미흡
건강보험보장성, 공공의대 등 진영논리 우려
정치적 아닌 과학적 방역 제시 후보 선택해야
본격적으로 대선 경주가 시작되는가 보다. 연일 여야 대선 주자들이 정책 공약들을 선보이고 있다. 대선 주자들의 선거 캠프에는 각 분야 전문가들이 모여 향후 5년간 대한민국을 주도할 정책 어젠다와 장밋빛 청사진을 만들기 시작했다. 대선 공약은 향후 정책으로 발전할 가능성이 있다는 점에서 그 무게와 중요성을 간과할 수 없다. 과거 대선 공약과 실제 정권교체 이후에 드러난 섣부른 공약들로 인한 정책 실패 사례들은 지금도 진행 중인 냉혹한 우리의 현실이다.
본질적으로 유권자들에게 선거용 공약들은 환상적이고 달콤하다. 그러나 그때뿐이다. 2017년 19대 대통령 선거 당시 문재인 후보 대선 공약집에는 건강보험 비급여 축소와 건강보험 보장성 대폭 확대, 실질적 본인부담 100만 원 상한제, 치매국가책임제, 일차의료와 공공보건 의료체계 강화 및 국가 방역역량 강화를 위한 질병청 승격과 보건복지부 복수차관제 도입이 담겼다.
그러나 정부 출범 후 100일도 되지 않아 더불어민주당이 대선 공약으로 내세웠던, 복지부 복수차관제 도입 등은 없던 일이 되었다. 당시 더불어민주당, 자유한국당, 국민의당, 바른정당은 원내수석부대표들의 합의하에 2017년 7월 20일 복수차관제 도입과 질병관리본부의 청 승격을 정부조직법 개정안에서 제외했다. 또한 지역 공공병원 20개소를 확충한다는 계획은 3개소 신축으로 축소됐다. 그마저도 이미 이전부터 설립이 확정됐거나 사실상 확정된 지역이었다. 코로나19 팬데믹으로 방역에서의 공공병원 역할과 중요성을 뼈저리게 실감했음에도 불구하고 이를 실천하기 위한 노력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진 셈이다. 향후 5년간 이런 정부 계획이 다 지켜진다고 해도 현재 8.9%인 공공병상은 5년 후 겨우 9.6%로 증가하는 게 고작이다.
성과가 없는 것은 아니다. 2017년 10월부터 중증 치매환자 본인부담률을 기존 최대 60%에서 10%로 인하했고 전국 256개 보건소에 치매안심센터를 설치했다. 상급종합병원의 선택진료(특진)가 사라졌고, 상급종합병원 및 종합병원 2, 3인실에 건강보험이 적용됐다. 그러나 대선 공약의 상징적인 목표였던 2022년 건강보험보장률 70% 달성 목표의 성과는 미미하기만 하다. 건강보험보장률은 2016년 62.6%, 2017년 62.7%, 2018년 63.8%, 2019년 64.2%에 그치고 있다.
코로나19 팬데믹으로 뒤늦게나마 질병관리본부가 질병청으로 승격됐다. 그러나 정상적인 방역 정책의 사령탑으로 기능하기 위해서는 여전히 갈 길이 멀다. 지금도 코로나 방역의 정책 결정 과정과 행정은 혼란스럽고 과학적이지 못하다. 인력, 예산 그리고 불분명한 의사결정구조 등 문제점이 드러나고 있다.
애초 설계와 검증이 부실했던 대선 공약의 문제점뿐만 아니라 정치적 이해관계에 따라 좌우되는 정치권의 행보도 문제다. 실제 공약 이행 시 현실적인 상황을 고려해야 하는 어려움도 있겠지만, 부실한 공약 이행은 본질적으로 정치적 이해관계의 조정 때문이기도 하다. 이건 여야 모두의 책임이다.
그보다 더 중요하고 구조적인 문제점은 대선 공약들이 종종 구태의연한 보건의료 이데올로기와 정치적 진영 논리에 매달린다는 것이다. 지난 십수 년간 보건의료 분야의 대선 공약은 소모적이고 진부한 진영 논리로 갖은 논쟁과 사회 갈등을 초래했다. 의료영리화와 건강보험 보장성 확대 논쟁, 의료 공공성과 보건의료산업 활성화 충돌, 공공의료와 민간의료의 대립, 원격의료 도입 및 적정 의사수 논란, 공공의대 설립, 보건부 분리신설 등 어느 것 하나 해결되거나 제대로 논의조차 하지 못했다. 그 바람에 분열은 커지고 갈등은 누적됐다.
내년 대선을 앞두고 이제 다시 달콤한 선심성 대선 공약이 혼란을 키울 것이다. 더 이상 국민에게 희망고문을 하지 말고, 불신의 구렁텅이에 빠뜨리지 않았으면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국민과 국가만을 바라보는 진정성 있는 방역 정책 공약을 내놓아야 한다. 코로나19 4차 대유행이 기승을 부리고, 국민의 고통이 가중되는 작금의 현실을 냉정하게 직시해 괜한 장밋빛 환상으로 국민을 현혹하지 말아야 한다. ‘지속가능한 국가 방역정책 및 관리체계 구축’은 냉철한 현실 비판과 통찰하에 ‘방역, 정치, 과학의 권한과 책임의 정상화’와 의사결정구조의 확립에서 시작해야 할 것이다. 유권자들도 보건의료 이데올로기와 정치진영 논리가 아닌 과학적이고 진정성 있는 방역 공약과 보건의료 대안을 제시하는 후보를 현명하게 선택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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