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이(친이명박) 친박(친박근혜)이 사라진 뒤 ‘무주공산’으로 불리던 국민의힘 당내 계파 구도가 최근 요동치고 있다. 최재형 전 감사원장에 이어 윤석열 전 검찰총장이 입당하고, 홍준표 유승민 원희룡 등 기존 대선 주자들도 기지개를 켜면서 의원들의 이합집산이 빨라지고 있어서다.
친윤(친윤석열)계는 윤 전 총장이 입당하기 전부터 세력화됐다. 6월 29일 윤 전 총장의 대선 출마 선언엔 국민의힘 의원이 24명 참석했고, 지난달 26일 윤 전 총장의 입당을 촉구하는 성명엔 40명의 의원이 이름을 올렸다. 두 곳 모두 이름을 올린 의원만 21명으로 이미 당내 최대 계파가 됐다는 평가가 나온다.
친최(친최재형)계도 세력을 키우는 중이다. 김용판 김미애 의원은 공개적으로 지지를 선언했고, 박대출 조해진 의원 등 10여 명이 캠프에 합류하거나 물밑에서 지원하고 있다. 국민의힘에 오래전부터 뿌리내려 온 친홍(친홍준표) 친유(친유승민) 계파도 언제든지 몸집을 불릴 수 있는 계파로 꼽힌다.
계파는 국민의힘에서 한동안 금기어였다. 2007년 대선 이후 당의 고질적 병폐였던 친이 친박의 극단적 갈등은 박근혜 전 대통령에 대한 탄핵과 정권을 넘겨준 핵심 원인으로 지목되기도 한다. 최근의 계파 형성에 대해 우려의 시각이 많은 것도 이 때문이다. 대선 후보 경선이 본격화되면 친윤과 친최의 갈등이 친이와 친박 못지않을 거란 전망도 많다. 이미 양측은 ‘드루킹 댓글 조작’ 판결에 대한 청와대 앞 1인 시위를 놓고 1라운드를 벌였다.
그러나 야권에선 계파정치의 부활을 반기는 이들도 적지 않다. 건전한 계파정치의 순기능만 발휘된다면 정권교체의 거대한 동력이 될 거란 주장이다. 친이와 친박도 처음부터 이전투구를 벌이진 않았다. 친이는 2007년 대선에서 ‘747 공약’(7%대 경제성장, 국민소득 4만 달러, 세계 7위 경제강국), 친박은 2012년 대선에서 ‘경제민주화’로 당시 ‘친이 정권’과 차별화되는 시대적 담론을 제시하며 비전 경쟁을 벌여 나갔고, 결국 정권교체와 재집권의 동력을 확보할 수 있었다.
양측의 비전이 100% 실현되지는 않았고 끝내는 권력투쟁으로 변질됐지만, 각 계파가 국민들의 선택을 받기 위해 경쟁하는 과정에서 미래 비전을 구체적으로 제시했기에 집권이 가능했다는 점엔 이견이 없다. 오랜만에 계파의 장이 서는 것에 대해 국민의힘 관계자는 “정당은 기본적으로 시끌시끌해야 한다. 모처럼 당에 생기가 도는 것 같아 오히려 반갑다”고 했다.
계파정치가 필수라면 병폐는 줄이고 순기능을 극대화하는 모습이어야 한다. 계파는 대선 주자 등 인물 중심으로 형성된다. 인물 계파는 그래서 필연적이다. 다만 인물 속에 비전을 담아야 계파정치의 순기능을 최대치로 올릴 수 있다. 윤석열 캠프 핵심 관계자는 “이제 구체적인 공약과 정책으로 승부를 보겠다”고 했고, 최 전 원장은 4일 대선 출마 선언에서 자신이 구상하는 미래 비전을 내놓는다. 다시 꿈틀대는 제1야당의 계파정치가 ‘인물 계파’를 넘어 ‘비전 계파’로 경쟁하는 모습을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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