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대한 예술가는 조화를 만들어내는 동시에 이를 뛰어넘는다. 고전주의 시대 위대한 예술가들도 형식을 따르는 것과 함께 자유를 추구했다. 인간은 모두 이성을 지녔고 이에 따라 자신의 삶을 개척할 자유가 있다는 게 계몽주의의 가르침이었다. 여기서 예술의 형식이란 이성을 표현하는 도구였다. 그 자체가 목적이 아닌 표현의 자유를 위한 바탕이었던 셈이다. 요컨대 형식을 추구하되 형식주의에 빠지지 않는 게 고전주의 예술가들의 지향점이었다.
이러한 시대정신은 모차르트의 걸작 교향곡 38번 ‘프라하’에서 완연히 드러난다. 1786년 12월 작곡돼 이듬해 1787년 1월 19일 프라하에서 초연된 이 작품은 프라하에 바치는 모차르트의 헌사로 알려져 있다. 오페라 ‘피가로의 결혼’에 보내준 프라하 시민들의 열렬한 지지에 대한 감사 표현이라는 것이다.
1악장은 모차르트의 모든 교향곡 중 가장 우아한 악장이다. 느린 아다지오 도입부는 반음계와 당김음, 다양한 전조 등으로 본 악장의 특징을 전한다. 오페라 ‘돈 조반니’를 연상시키는 단조와 팀파니 소리가 듣는 이에게 긴장감을 준다. 반면 본 악장은 ‘마술피리’ 서곡을 연상시킬 만큼 역동적이다. 각각의 악절은 매끄럽게 이어져 있다. 엄격한 형식 안에서 유기체적인 매력을 선보이는 정교하고 완벽한 악상이다.
명상적인 2악장은 안단테로 그 아름다움에도 불구하고 갑작스러운 단조 선율과 불안한 반음계로 인해 비극적인 인상을 드리운다. 3악장도 빠른 프레스토 선율로 밝고 활기차지만 역시 단조와 하강의 선율 등에서 체념의 정서가 느껴진다. 이 때문에 음악학자 앨프리드 아인슈타인은 3악장에 대해 “외적인 유쾌함에도 불구하고 영혼에 남겨진 상처를 드러내는 악장”이라고 했다. 그럼에도 서정성과 익살, 전체적인 조화미가 기존 오페라들과 대조적이면서도 이질감 없이 양립하는 놀라운 경지는 모차르트의 위대함을 실감하게 해준다.
일반적으로 교향곡에는 춤곡이 형식적으로 포함되지만 프라하 교향곡은 예외다. 모차르트는 왜 춤곡 악장을 쓰지 않았을까. 도입부에 모든 게 들어 있기 때문이라거나 3악장으로 된 이탈리아 교향악의 전통을 따랐다거나 혹은 단순히 시간이 부족했을 것이라는 등 많은 해석이 있다. 음악 전문가 쿠르트 팔렌은 이같이 지적했다. “모차르트가 이 같은 엄숙한 작품을 가벼운 춤곡으로 끊어놓고 싶었겠는가?” 세 개 악장은 모두 극도로 우아하지만 동시에 깊은 내적 고뇌를 숨기고 있다. 어쩌면 모차르트는 혼자 있고 싶었으리라. 본질적으로 사교적인 춤곡 악장은 내면의 고독을 말하려는 작품과 어울리기 어렵다. 이처럼 형식은 내용에 따라 고칠 수 있다. 그것이 혁신이다. 우리 시대와 상황에 맞는 형식은 뭘까. 질서, 법령 등은 그 자체가 ‘정답’이 아니라 바꿀 수 있는 ‘도구’다. 그것이 곧 질서 속 자유다. 질서 속 자유는 모차르트의 프라하 교향곡처럼 아름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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