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탄소 배출 대처가 생사 가를 수도”… 수출경쟁력 지키기 절실[수요논점]

  • 동아일보
  • 입력 2021년 8월 4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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급물살 탄 탄소국경세-탄소세



허진석 논설위원
허진석 논설위원
《7월 말 포스코와 현대제철은 올해 2분기에 역대 최대 규모의 영업이익을 달성했다고 실적을 발표했다. 하지만 웃을 수가 없다. 철강은 대표적인 탄소배출 산업인데 유럽연합(EU)이 수입품의 탄소배출 정도를 따져 부담금을 지우는 탄소국경조정제도(CBAM·탄소국경세) 도입을 지난달 밝혔기 때문이다. 미국의 조 바이든 행정부도 2025년 탄소국경세를 도입할 계획이다. 여기에 우리 정부는 2050 탄소중립을 실현하기 위해 국내 기업에 적용할 탄소세 도입을 추진 중이다. 탄소국경세와 탄소세는 수출과 제조업 중심의 한국엔 중대한 도전이다. 20년 전부터 탈탄소 경제를 준비한 EU의 수준에 맞추려면 시간이 많지도 않다.》

EU, 5개 분야에 우선 적용


EU는 2023년 1월 1일부터 철강 알루미늄 시멘트 비료 전기 등 5개 분야에 탄소국경세를 적용할 계획이다. 수입품의 탄소 함유량을 조사해 EU의 탄소배출권거래제(ETS)와 연계된 탄소 가격을 별도로 부과한다. 3년간은 수입품의 탄소배출량 보고만 받고, 2026년부터 실제로 부과한다. 탄소배출량을 실물 가격에 반영함에 따라 EU에 비해 상대적으로 탄소배출량이 많은 개발도상국 수출품은 그만큼 가격 경쟁력을 잃게 된다. EU는 탄소국경세를 발표하면서 전 지구적 탄소배출 감축을 명분으로 세웠지만 개도국에 대한 탄소 감축 기술 지원에 관한 내용을 담지 않았다. 사실상 관세를 부과하는 방식을 택함에 따라 중국과 러시아 등 탄소배출이 많은 국가를 중심으로 ‘탄소를 앞세운 신무역장벽’이라는 비판을 받고 있다.

철강사 年 4000억 부담할 수도


탄소국경세는 국내 철강 산업에 큰 영향을 끼칠 것으로 전망된다. 탄소국경세가 적용될 5개 품목 중 지난해 철·철강은 221만 t으로 절대 다수를 차지한다. 알루미늄(5만2600t), 비료(9214t), 시멘트(80t) 등은 상대적으로 미미하다. EY한영회계법인은 2023년 EU가 t당 30.6달러의 탄소국경세를 부과한다면 우리 철강업계는 연간 약 1600억 원을 부담해야 한다고 추산했다. 탄소배출권의 가격 상승으로 2030년에는 t당 75달러가 부과될 경우 부담액은 4000억 원으로 늘어난다. 2030년 기준 철·철강 수출액의 12.6%나 될 것으로 추산된다. 우리 철강업계의 영업이익률이 10%대인 것을 감안하면 적자 수출이 예상되는 수준이다.

EU는 탄소국경세 제도를 발표하면서 2035년 EU에서 내연기관 차량 판매도 금지했다. 현대차는 2040년에 유럽 미국 중국 등 주요 시장에서 전기차 판매를 전면화할 계획이었는데, 이를 앞당겨야 하는 부담을 지게 됐다.

EU는 탄소국경세를 전 수입품으로 확대할 방침이다. 문진영 대외경제정책연구원 글로벌전략팀장은 “EU의 탄소국경세는 개도국의 반발과 그에 따른 보복관세 등 장애물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탄소중립이라는 명분 때문에 확대될 가능성이 크다”며 “아직도 탄소배출량이 늘고 있는 우리가 이에 대한 대처를 소홀히 했다가는 생존의 위협을 받을 수 있다”고 말했다.

우리 정부는 탄소세 도입 추진


수출품에 적용되는 탄소국경세와 별개로 국내에서는 탄소배출에 비례해 세금을 매기는 탄소세 도입이 추진 중이다. 정부는 탄소중립 전환 지원을 위한 ‘기후대응기금’ 마련을 위한 세제와 부담금, 배출권 거래제 등 탄소 가격 부과 체계의 전면 검토에 착수한 상태다. 탄소세는 해외 사례를 참고해 석유·석탄 등 화석연료 사용량이 많은 기업과 업종을 중심으로 부과될 것으로 보인다.

문제는 산업 경쟁력 훼손이다. 전 세계에서 탄소세를 시행하는 나라는 25개국이지만 제조업보다는 서비스업이 발달한 유럽 국가가 대부분이다. 한국은행은 최근 t당 50달러의 탄소국경세를 유럽과 미국이 모두 도입한다면 우리 수출이 8조 원(1.1%) 줄고 국내총생산(GDP)은 0.28% 줄 것이라고 추정했다. 여기에 탄소세 부담까지 더해지면 주력 수출 업종인 철강과 석유화학 관련 업종의 수출 타격은 더 커질 수밖에 없다.

국회에 2건의 탄소세 관련 법안도 계류 중이다. 국회에 발의된 법안에 따르면 온실가스 t당 4만∼8만 원을 2025년까지 단계적으로 부과토록 돼 있다. 최대 36조3000억 원의 부담이 기업에 부과되는데 2019년 법인세수의 절반이 넘는 비현실적인 규모다.

탄소저감기술 혁신이 활로


전문가들은 탄소배출 감축 기술 확립을 위해 적극적인 인센티브 정책을 펴야 한다고 제안한다. 문재인 대통령도 지난해 11월 ‘2050 탄소중립 범부처 전략회의’에서 실질적인 탄소중립을 위해서는 탄소배출 감축 기술이 전제돼야 한다고 밝힌 바 있다.

EU는 탄소배출 감축 기술의 사업화와 상용화를 위해 혁신펀드를 설립하고, 2030년까지 13조6000억 원을 투입할 예정이다. 호주는 저탄소배출 기술 개발에 2030년까지 15조5000억 원을 투자할 계획이다.

이호근 연세대 경영대학 교수는 “탄소세나 탄소배출권 거래제는 임시방편의 성격이 강하다”며 “제철 과정에서 탄소가 나오지 않도록 하는 수소환원제철공법 같은 탄소 감축 기술 개발에 나서는 기업들에 과감한 인센티브를 제공해야 탄소배출을 줄일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탄소세, 조세 부담 커 호주는 2년 만에 폐지


프랑스는 세율 인상 유예

탄소세 제도는 핀란드 스웨덴 덴마크 등 유럽 국가를 중심으로 25개국에서 시행 중이다.

북유럽 국가들은 탄소세와 배출권거래제를 함께 시행하는 곳이 많아 중복 규제를 피하기 위해 법인세나 소득세 등 다른 세금을 감면하는 조치를 병행하고 있다. 1990년 세계 최초로 탄소세를 도입한 핀란드는 1997년과 2011년 에너지 세제 개혁을 통해 개인의 소득세와 기업의 사회보장비 부담을 줄여줬다. 배출권거래제 대상 기업에는 배출권을 무료 할당하는 방식으로 탄소세 부담을 줄여줬다.

아시아에서는 일본과 싱가포르가 탄소세를 도입했다. 일본은 2012년 10월 ‘지구 온난화 대책세’라는 이름으로 아시아에서 처음으로 탄소세를 도입했다. 세율은 이산화탄소 t당 3달러. 기존 석유석탄세에 더해 부과하면서 면세와 환급 조치를 병행하는 방식을 택했다. 세수는 재생에너지 도입, 에너지 수급구조 개선 등에 쓴다. 싱가포르는 2019년 연간 25kt 이상의 이산화탄소를 배출하는 기업을 대상으로 탄소세 제도를 도입했다. 2023년까지 이산화탄소 t당 4달러의 세금을 부과하고, 2030년에 가서는 7.5∼11.3달러를 부과할 예정이다.

탄소세 도입이 순탄한 것만은 아니다. 호주는 2012년 7월 탄소세를 도입했지만 광산과 에너지, 유통 기업은 물론 소비자의 부담이 늘어나 2014년 7월 폐지했다. 2014년 탄소세를 도입한 프랑스는 탄소세율을 인상할 계획을 가지고 있다가 2018년 11월 유류세 인상에 반대하는 ‘노란 조끼 시위’가 발생하자 인상 계획을 유예한 상태다.

탄소배출권거래제(ETS)
정부가 탄소 전체 배출 허용 총량을 설정하고, 기업이 그 범위 내에서 배출권을 부여받는 방식. 남거나 모자라는 배출권은 시장에서 거래.


탄소세
정부가 정한 세율에 의해 탄소 배출량에 따른 세금을 지불하는 방식. 탄소 가격은 세율에 의해 일정하게 관리되는 특징이 있음.


탄소국경세
유럽연합(EU)이 처음 도입하는 제도로 탄소세와 탄소배출권과 달리 역외 국가 제품에 적용하는 일종의 관세. EU보다 탄소 배출이 많은 국가에서 생산된 제품에 비용을 부과해 무역장벽의 효과를 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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