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의힘에 입당한 최재형 전 감사원장이 어제 대선 출마를 공식 선언했다. 감사원장을 중도 사퇴한 지 37일 만이다. 헌법기관의 수장이 임기를 채우지 않고 정치권으로 직행한 선례를 남긴 데 대해 그는 “무너져 가는 대한민국을 지켜 보고만 있을 수는 없었다”고 했다. 임기를 마치고 좋은 평판을 받는 사람으로 남을지 고민도 했지만 ‘나라 걱정’이 더 컸다는 설명이다.
그는 선언문 내내 문재인 정권에 대한 작심 비판을 쏟아냈다. 헌법과 법률에 따라 직무를 수행하려 했지만 ‘권력의 단맛’에 취한 정권의 벽에 부딪혔다는 것이다. 국가의 근간을 이루는 시스템의 파괴, 자유민주주의에 대한 공격과 시장 경제 원리의 훼손을 목도하고도 막을 수 없었다고 했다. 자신이 왜 직접 나설 수밖에 없었는지에 대해선 뚜렷이 밝히지 않은 채 윤석열 전 검찰총장과 비교해 “정치적 분열에서 자유롭다”며 자신의 강점을 강조하는 듯한 태도를 취했다.
그가 선언문에서 중점을 둔 것은 대통령 권력, 청와대 권력을 어떻게 관리하고 통제할 것인지에 대한 방향이다. 그는 “대통령이 권한을 제왕적으로 행사하는 게 문제”라며 청와대의 위법하고 부당한 인사 개입을 더 이상 해서는 안 될 것이라고 했다. 역대 대통령들도 모두 대선 기간엔 비슷한 다짐을 했지만, 당선 후엔 달라진 모습을 보여 왔다. 제왕적 대통령제의 폐해를 해결하겠다는 약속이 국민 공감을 얻으려면 더 구체적인 실천 방안을 제시해야 한다.
법관과 감사원장 경력이 전부인 최 전 원장이 복잡다기한 국정의 최고책임자로 적임이냐는 데 의구심을 갖고 있는 이들도 있다. 그는 “마음껏 실력을 펼칠 수 있는 나라, 시장 경제 원리가 제대로 작동하는 나라를 만들겠다”며 몇 가지 정책 비전을 언급했지만 원론적인 수준이었다. 최 전 원장은 세부적인 국정 현안에 대한 질의에는 “지금 말할 상황이 아니다” “공부를 열심히 해서 말하겠다” “준비가 안 된 점을 인정한다”는 등의 답을 하기도 했다. 하지만 막연한 나라 걱정만으로 국정을 운영할 수는 없다. 다른 후보들과 차별화된 자신만의 정책과 어젠다를 보여줘야 한다. 시간은 그리 많이 남아 있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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