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기해요. 따로 동선을 만들어 유도하지도 않았는데 사람들이 이끌리듯 이 작품 앞으로 와요.”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열리고 있는 ‘위대한 문화유산을 함께 누리다’ 전시 관계자분에게 들은 얘기다. 자석처럼 사람을 끌어들인 그 작품은 백자청화산수무늬병. 저 멀리 나즈막한 산이 펼쳐지고 강가에 나룻배를 띄운 사공이 한가로이 노를 젓고 있다. 봄날인 듯 물살은 잔잔하고 주변 정경은 멈춘 듯 고요하다. 텅 비워 꽉 차는 작품. 그 앞에 오랫동안 서 있다 왔다.
나이가 드는 탓인가. 번다한 일상 때문인가. 이제 여운으로 남는 시간은 무언가를 보고 느끼느라 바쁜 때가 아니고 오늘 할 일을 깨끗이 단념한 후 느리게 흘려보내는 순간이다. 예를 들어 단양의 한 민박집에서 보낸 시간. 부부가 직접 지은 집 한쪽에는 야외 덱이 딸려 있었다. 맞은편으로는 야트막한 산이 겹겹이 펼쳐졌다. 덱에는 나무 테이블과 캠핑 의자가 있었다. 테이블에 다리를 올리고 의자에 몸을 기댄 채 조용한 마을과 산자락을 구경했다. 한시도 지루하지 않았던 것은 한시도 같은 풍경이 없었기 때문이다. 바람에 감나무 잎이 흔들렸고 눈앞으로 나비가 날아갔다. 분홍바늘꽃 안에는 꿀벌이 한가득했다. 붕붕. 멸종한 줄 알았던 꿀벌은 거기 다 모여 있었다. 책장에서 꺼내 온 책을 읽다 허기가 느껴지면 잔디밭을 가로질러 있는 작은 텃밭에서 방울토마토를 따 먹었다. 머리에 바람이 들어가 그런가, 좋은 생각도 여럿 떠올라 휴대전화를 꺼내 메모도 열심히 했다. 빈둥빈둥 노는 시간이었지만 오랜만에 아주 생산적인 상태에 있는 것 같았다. 성미가 급해 수영장 선베드나 사우나에서도 오래 못 누워 있는데 지붕을 올린 야외 덱에서는 마음 편히 게으를 수 있었다. 적당히 따뜻하고 적당히 시원하며 적당히 아늑한 곳. 언젠가 시골집을 짓게 된다면 야외 덱만은 꼭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날 읽은 책 중 하나가 헤르만 헤세의 ‘밤의 사색’이었다. 특히 ‘무위의 기술’이란 제목의 수필이 좋았다. “가능한 한 빨리 유아기에서 벗어나 억지로 노력하고 쉴 새 없이 달리라고 가르칠수록 적당히 게으름을 피우는 무위의 기술도 점점 더 아득히 사라져간다. 한때 우리는 모두 그런 기술의 대가였는데….” 시간이 돈인 시대, 무(無)를 향한 시간은 한가한 소리로 치부되기 일쑤지만 무위의 시간과 기술이야말로 어떻게든 지켜내야 할 인생의 덕목이 아닐까 싶다. 우리는 백자청화산수무늬병처럼 평온한 시공간에 본능처럼 이끌리는 인간이므로. 유의미한 것들로만 채워진 세상에서는 누구라도 잘 살 수 없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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