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행기 타지 말고 헤엄쳐 돌아오라.” 국제올림픽위원회(IOC)가 운영하는 공식 한국어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계정에 7일 달린 댓글이다. 이날 한국 야구 대표팀은 일본 요코하마 스타디움에서 열린 도미니카공화국과의 2020 도쿄 올림픽 동메달 결정전에서 6-10으로 지며 ‘노메달’에 그쳤다. IOC 계정 운영자는 한국 선수들의 사진과 함께 “수고하셨습니다”라는 게시글을 올렸지만, “경기를 시청한 국민들이 수고했다”는 등 대부분의 댓글은 반감 또는 조롱에 가까운 내용이었다. 무엇이 팬들을 이토록 분노하게 했을까. 이번 올림픽에서는 4위를 기록한 팀 또는 선수들이 찬사를 받았다. 김연경(33)이 이끈 여자 배구 대표팀, 육상 높이뛰기의 우상혁(25), 근대5종의 정진화(32) 등도 4위로 대회를 마무리했다. 같은 4위로 마감한 한국 야구를 향한 국민적 분노의 원인은 ‘성적 부진’만이 아니었다. 핵심은 “졌잘싸(졌지만 잘 싸웠다)”라고 말해줄 수 없는 선수들의 태도에 있었다.》
○ 올림픽 시작부터 끝까지 논란
한국 야구는 대표 선수 선발 때부터 진통을 앓았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방역수칙을 위반해가며 외부인과 원정 숙소에서 술을 마신 선수들이 나왔고, 이도 모자라 경찰에 허위 진술을 한 사실이 들통 났다. 국가대표로 이름을 올렸던 주전 2루수 박민우(28·NC)와 사이드암 투수 한현희(28·키움)가 이 사건으로 급작스럽게 태극마크를 자진 반납했다.
한국 최고 인기 스포츠라는 프로야구가 논란의 중심에 선 건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지난 10년간 발생한 주요 사건만 모아도 다섯 손가락이 모자란다. 2004년 프로야구계를 뒤흔든 대형 병역 비리 사건이 터졌고, 2012년에는 승부 조작 사건이 불거져 홍역을 치렀다. 2015년에는 현역 선수들의 해외 원정 도박 사실이 드러났고, 음주운전 문제는 잊을 만하면 한 번씩 발생하고 있다.
처벌이 잇따랐지만 프로야구 팬들의 공분을 달래주기에는 충분치 않았다. 한국야구위원회(KBO)는 코로나19 방역수칙 위반 문제를 놓고 KBO 규약 제151조 품위손상행위에 해당한다고 판단하고, NC·키움·한화 선수들에게 10∼72경기 출장 정지 처분을 내렸다. 품위손상행위에 대해 KBO가 가할 수 있는 실격, 직무정지 등 제재의 범위를 놓고 볼 때 중간 수준의 처벌이었다. 키움 구단은 한술 더 떠 한현희에게 15경기 출장 정지와 벌금 1000만 원을 부과했다. 안우진에게는 출장 정지 없이 벌금 500만 원만 부과했다.
○ 누적된 실망이 분노로
쌓인 실망감은 올림픽 기간 분노로 표출됐다. 7일 동메달 결정전 중계 당시 인터넷 댓글 창에서 대표팀에 호의적인 댓글을 찾아보기는 힘들었다. 한 야구팬은 “태어나서 한국이 아닌 상대 국가를 이렇게 응원한 적은 처음”이라고 했다.
전날에는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 “야구 대표팀이 동메달을 따더라도 군 면제 혜택을 받지 않게 해달라”는 글이 올라와 1만 명에 가까운 동의를 받았다. 일부 비인기 종목 국가대표 선수들의 발언이 알려지면서 야구 대표팀을 향한 비난의 화살은 더 거세졌다. 일병 계급장을 달고 있는 사격 국가대표 김모세는 “메달을 따더라도 병역 면제 혜택을 받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고, 역시 일병인 높이뛰기 우상혁은 “규칙적인 군 생활이 운동에 도움이 됐다”고 말해 화제가 됐다.
이기광 국민대 체육학과 교수는 “병역 혜택은 결국 개인의 이득인데, 이번 올림픽에서 ‘야구 선수들이 국가와 국민을 위해 뛰고 있나’ 하는 의구심을 불러일으킨 것 같다”며 “올림픽 이후 스포츠 선수들의 군 면제 문제가 다시 거론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야구계 선배들도 비난의 목소리를 높였다. 8일 김응용 전 대한야구소프트볼협회장은 “이번 올림픽은 배에 기름이 찬 상태에서 뛴 것이나 다름없다”며 “KBO는 구성원 중 잘못한 이가 있으면 재발 방지를 위해 엄단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순철 SBS 해설위원도 “6개국 가운데 메달 진입에 실패했다는 건 크나큰 치욕”이라며 “선배들이 쌓아놓은 한국 야구의 위상을 후배들 스스로 깎아 먹었다”고 강조했다.
○ 야구 원로·지도자도 반성해야
하지만 전문가들은 후배들에게 쓴소리를 하고 있는 야구 원로들과 현 지도자들의 책임도 적지 않다는 입장이다. 이번 코로나19 사태 등으로 드러난 선수들의 실망스러운 모습은 과거 세대의 선수들과 비교하면 오히려 나아진 수준이라는 것.
한 야구 관계자는 “프로야구 초창기 때는 숙소에 이성을 부르고, 술 마시는 것보다 훨씬 더한 일도 많이 했다”며 “지금 원로라고 하는 야구계 대선배들과 지도자들이 현역 시절 그렇게 생활해 놓고 이제 와서 후배들을 탓하면, 듣는 후배 입장에서는 납득이 될 리가 없다. 당장 충고를 들으면 ‘자기는?’이라는 말부터 튀어나올 것”이라고 설명했다.
지도자의 세대교체가 필요하다는 주문도 나왔다. 전용배 단국대 스포츠산업학과 교수는 “여자 배구 대표팀 스테파노 라바리니 감독은 권위를 내려놨다. 자기 방식에 대한 고집이 없고, 전술·전략에 대한 선수들과의 토론을 즐겨 한 점이 성공 요인”이라며 “권위주의적 시절 선수 생활을 했던 한국의 지도자들은 자신의 성공 경험이 고집으로 나타나면서 한계를 드러낼 수밖에 없었다”고 설명했다.
○ 한국 야구, 체질부터 개선해야
이에 따라 선수, 지도자 할 것 없이 KBO리그 차원의 인성 교육을 개선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KBO의 클린베이스볼센터는 매년 선수와 지도자를 대상으로 스포츠윤리와 도핑방지 교육을 실시한다. 하지만 스포츠윤리 교육은 선수 기준 1년에 3시간, 승부 조작·불법 도박·음주운전 등 온라인 교육 역시 모두 합쳐 3시간가량에 불과하다.
전 교수는 “지금도 KBO가 선수들과 지도자들에게 주기적인 교육 프로그램을 제공하고 있지만, 더 정교한 프로그램을 통해 ‘해도 되는 것’과 ‘해선 안 될 것’을 끊임없이 주입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교육계에서는 프로 선수 입단 전부터 일반 학생들과 함께 전인적 교육을 받으며 성장할 수 있는 계기를 만들어줘야 한다는 주장도 나왔다. 학교장 재량으로 학생 선수들이 정규 수업 시간에 운동에 집중하도록 유도하는 편법이 계속되고 있는데, 이처럼 전인적 교육을 받을 기회를 없애선 안 된다는 것이다. 오정훈 서울시교육청 체육건강문화예술과장은 “프로 입단 이후 인성 교육을 논하기보다 초중고교 시절부터 인성과 사회성을 기를 수 있도록 도와주는 편이 합리적”이라며 “이번 올림픽을 계기로 스포츠는 올림픽 등 국제대회에 ‘국위선양’을 위해 필요하다는 엘리트주의적 체육의 관념을 내려놔야 한다. 학생 선수들이 공부와 운동, 인성 교육을 다채롭게 받을 수 있도록 생활 체육을 강화할 필요가 있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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