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미의 ‘오줌 세례’[서광원의 자연과 삶]〈41〉

  • 동아일보
  • 입력 2021년 8월 12일 03시 00분



서광원 인간자연생명력연구소장
서광원 인간자연생명력연구소장
얼마 전 이른 아침이었다. 졸린 눈을 비비며 아파트 베란다 방충망을 여는 순간 눈앞에 큼지막하게 보이는 게 있었다. 세상에, 방충망 바깥쪽 한가운데, 그러니까 바로 눈앞에 매미 한 마리가 붙어 있는 게 아닌가.

그야말로 눈앞이라 매미의 가슴팍이며 다리까지 너무나 선명하게 보이는데 문제는 손이 이미 방충망 문을 힘차게 당기고 있었다는 것이다. 나만큼이나 깜짝 놀란 매미는 휙 날아가 버렸고 덕분에 졸음도 깔끔하게 날아가 버렸다. 도심 한가운데 있는 아파트 고층까지 찾아온 매미를 아주 가까이서 감상할 수 있었는데 아쉬웠다.

생각해보니 다행이다 싶기도 했다. 녀석들에게 멋모르고 다가갔다가 생각지도 않은 봉변을 당하는 일이 많기 때문이다. 생각지도 않은 봉변이란 당해 보면 아주 찝찝하고 기분 나쁜, 그래서 죽자 사자 녀석들을 잡으러 다니게 되는 ‘오줌 세례’다.

녀석들은 자신을 잡으러 살금살금 다가오는 사람들에게 회심의 한 방을 먹이곤 하는데 휙 날아오르면서 오줌을 찍 발사한다. 매미들이 앉아 있는 곳이 사람 키보다 약간 높은 곳이라 다가가는 사람의 얼굴에 그대로 명중하기 십상이다. 매미는 기쁘겠지만 맞은 사람의 기분은 최악이 되는 순간인데, 정말 그럴까 싶다면 시도해 보는 것도 괜찮다. 얼마나 적개심이 드는지 알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 비장의 무기는 의도적인 게 아니다. 매미는 나무에서 나오는 수액이나 이슬을 먹는데, 고로쇠 물이 그렇듯 달다. 그래서 자기도 모르게 많이 먹을 때가 많은데 그 와중에 갑자기 날아가야 할 일이 생기면 어떨까? 몸이 무거워 날렵하게 날지 못하니 생명이 위급해진다. 이럴 때 방법은 하나. 몸무게를 줄이는 것이다. 그래서 먹은 수액을 오줌으로 급하게 배출한다. 우리 입장에서 보니 오줌인 것이지 사실은 방금 먹은 수액이다. 나쁜 게 아닌 것이다.

아니 어쨌든 배 속에 들어갔던 것이고 오줌처럼 배출됐으니 오줌 아니냐고 할 수 있겠지만, 그렇다면 벌꿀도 마찬가지다. 벌꿀이라는 게 사실은 벌들이 먹고 토해 놓은 것 아닌가. 오줌은 찝찝하지만 토사물은 좋다니 세상 참 알 수 없다. 믿음이 이렇게 무섭다. 어쨌든 덕분에 사람들이 무턱대고 잡지 않게 됐으니 매미로서는 본의 아니게 괜찮은 방어무기를 갖게 된 셈이다.

이런 일이 사람 사이에서 일어나면 어떨까? 나도 모르게 하는 나의 행동이 누군가에게 해가 될 수도 있는 일 말이다. 나도 모르게 하는 행동이라 나는 모르지만 내 행동에 기분이 나빠진 상대는 부정적으로 반응할 것이고 그러면 나 또한 마찬가지일 것이다. 이런 일이 몇 번 이어지면 사이는 틀어지고 만다. 서로 상대를 탓하면서 말이다. 나도 모르게 하는 행동을 조심할 것. 먼 곳까지 귀하게 찾아왔다 날아간 손님이 ‘오줌 세례’ 대신 큰 깨달음을 주고 갔다.

#매미#오줌 세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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