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환자실 가실지 빨리 알려주세요. 안 가시면 환자분 돌아가세요. 중환자실 가셔도 좋아진다고 장담 못 해요. 중환자실에서 돌아가실 가능성이 훨씬 커요.” 만일 말기 암인 부모님을 응급실에 모시고 온 당신에게 응급실 의사가 이렇게 말했다면, 어떤 선택을 해야 할까? 의사 말만 들어서는 중환자실을 가나 안 가나 돌아가실 것 같은데 어쩌라는 건지 당최 알 수 없다. 환자는 의식이 없으니 본인 의사를 물을 수도 없다.
이런 때를 대비해 연명의료를 하지 않겠다는 ‘사전연명의료의향서’를 미리 작성해두라고 법은 권하고 있지만 죽음에 대한 이야기를 금기시하는 우리 사회에서 이 문서에 미리 서명해두는 사람은 많지 않다. 거기에 ‘중환자실=최선=효도’라는 인식체계가 발동하면 가족들은 대부분 중환자실행을 선택한다.
그러나 곧 후회하게 된다. 의식 없이 인공호흡기에 의해 ‘호흡당하고’ 있는 부모님을 보면 살아계셔도 살아계신 게 아님을 금방 깨닫는다. 고통스러우니 인공호흡기를 제거해달라고 하면 의료진은 이제 와서 왜 그러냐며 핀잔하고, 인공호흡기를 떼면 바로 돌아가실 텐데 그래도 괜찮다면 가족들 모두 서명하라며 연명의료 중단 서류를 내민다. 여기에 서명하고 나면 마치 자신이 부모님을 죽인 것만 같다. 결국 예정된 죽음을 조금 미루는 것치곤 잔혹한 대가를 치르고 나서야 환자는 임종을 맞고, 유가족 가슴에 지울 수 없는 피멍이 남는다.
중환자실은 집중적으로 치료해서 가역적으로 좋아질 것이 예상될 때 가는 곳이다. 반드시 중환자실에 가야만 하는 환자들이 있다. 그런 경우 의사는 선택지를 주지 않고 “중환자실 갑니다”라고 통보한다. 하지만 암과 같은 중병이 비가역적으로 계속 나빠질 때는 일반적으로 심폐소생술과 인공호흡기, 중환자실 치료를 권하지 않는다. 즉, 중환자실이 죽음으로 가는 과정에서 꼭 거쳐야 하는 곳이 아니라는 뜻이다.
하지만 치료 중심 현대의학에 찌든 의사들의 자동능(自動能)은 점차 중환자실을 루틴으로 만들어버렸다. ‘숨이 멎는다, 심폐소생술을 한다, 기도삽관을 한다, 인공호흡기를 단다, 중환자실로 간다, 며칠 뒤 사망한다.’ 이러한 자동 프로세스 속에서 인간의 존엄성은 무참히 뭉개진다. 중환자실이 중환자실에 오지 말았어야 하는 환자들로 꽉 차니 정작 중환자실에 가야만 하는 환자들은 병상이 없어서 목숨을 잃는다.
큰 병이 어쩔 수 없이 나빠질 때에 불필요하게 중환자실에 가지 않겠다는 본인 뜻을 평소에 미리 밝혀두지 않은 대가치고는 너무 혹독하다. 이것이 과연 우리 사회의 죽음에 대한 통과 의례일까? 중환자실이란 과연 무엇인지 다시 한 번 생각해 보지 않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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