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과 내일/정연욱]‘영원한 캠페인’의 덫

  • 동아일보
  • 입력 2021년 8월 14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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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 다수보다 지지층 의식한 국정 운영
정책 성과를 선거 캠페인과 혼동 말아야

정연욱 논설위원
정연욱 논설위원
문재인 대통령은 코로나19 일일 확진자 수가 심리적 마지노선인 2000명을 넘자 “델타 변이 확산에 따른 전 세계적인 현상”이라면서도 “우리나라는 여전히 다른 국가들보다는 상대적으로 나은 상황을 유지하고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정작 백신 공급 차질 사태에 대해선 솔직한 유감 표명이나 사과도 없었다. 보건복지부 장관이 고개를 숙여 대국민 사과한 것으로 갈음한 듯하다.

그나마 대통령이 정책 실패에 대해 직접 “송구하다”며 사과한 경우는 부동산대책 정도다. 하지만 주택 공급은 부족하지 않다는 입장만 거둬들였을 뿐 시장을 무시한 잘못된 정책 기조는 바꿀 생각은 없어 보인다. 오히려 여전히 꺾이지 않는 집값과 전·월세난을 조장한 원인을 정책 실패가 아니라 투기세력에서 찾는 분위기다. 정부 잘못이 아니라 시장을 교란하는 투기세력으로 과녁을 옮겨 가는 모양새다.

정권의 성적표는 민생과 직결된 정책 성과에서 승부가 나기 마련이다. 문재인 정부가 온 국민의 관심사인 코로나 방역과 부동산대책 등에 집중하는 이유일 것이다. 이 같은 민생 전선이 흔들리면 안 그래도 험한 임기 말 국정 관리는 어려워진다. 그래서 후폭풍이 몰아칠 대통령의 사과나 정책기조 전환은 주저하는 것이다. 정권이 민생 드라이브를 외친다고 해서 정치와 무관할 수 없는 것이다.

민감한 정치적 이슈가 터지면 문재인 청와대는 아예 침묵하거나 무대응으로 일관하는 일도 잦아지고 있다. 2017년 대통령선거 당시 문재인 대선후보 특보 활동을 했던 이들이 연루된 충북 간첩단 사건에 대해 청와대는 “언급할 가치가 없다”고 했다. 대통령의 ‘복심’인 김경수 경남도지사가 대법원에서 유죄선고를 받은 드루킹 사건에 대해선 “입장이 없다는 게 입장”이라고 했다. 논란을 피하기 위한 전략적 봉쇄 조치나 다름없다. 굳이 실익이 없는 공방에 휩쓸려 지지 세력의 이탈을 자초할 필요가 없다는 정치적 계산이 엿보이는 대목이다. 여권은 노무현 정부에서 한미 자유무역협정(FTA)과 제주해군기지를 놓고 진보좌파 진영이 사분오열 갈라진 악몽을 반면교사로 삼고 있을 것이다.

문재인 청와대가 민생에만 전념하겠다고 강조하는 것은 정치권과 거리를 두면서 대선 정국에서 정치적 중립 명분도 챙기려는 포석이다. 그러나 정치적 중립 의지를 신뢰할 만한 조치는 미흡해 보인다. 무엇보다 선거 내각의 핵심인 검찰과 경찰의 주무 장관이 모두 친문 핵심 의원이다. 법무부 장관은 대놓고 “나는 장관이지만 여당 의원”이라고 말했다. 더구나 선거관리 실무 사령탑인 선관위 상임위원은 문재인 대선캠프에 이름을 올렸던 사람이다. 이렇게 운동장이 기울어졌는데도 “문재인 정부는 정치적 편향 DNA가 없다”라고만 할 건가.

1980년대 미국 언론인 시드니 블루먼솔은 ‘영원한 캠페인(permanent campaign)’의 위험성을 갈파했다. 대통령이 당선된 이후에도 정치적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전략적 계산과 이미지 메이킹이 결합된 행보를 계속한다는 것이다. 대통령 주변 참모들은 이런 선거 캠페인의 관성에서 쉽게 벗어나지 못한다고 한다. 국정 운영을 위한 통합과 협치는 취임사에서나 잠깐 등장했을 뿐 현실에서 찾아보기 어려운 이유다.

여권이 압도적 의석만 믿고 지지층만을 의식해 밀어붙인 임대차법 등의 후유증은 새삼 거론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여권이 진정 민생 성과를 내기 위해선 국민을 머릿수로 계산해 ‘1 대 99’로 편 가르는 정치, 이미지와 그럴듯한 구호로 포장된 정치와 과감히 절연해야 한다. 국정 운영은 선거 캠페인과 달라야 한다.

#영원한 캠페인#문재인 대통령#정책 실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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