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일 카자흐스탄의 한낮은 너무도 더웠다. 서울에서 홍범도 장군의 유해를 모시기 위해 대통령특사 자격으로 특별수송기에 올라 7시간 넘게 날아간 곳. 카자흐스탄 크질오르다의 중앙공동묘역 앞에 섰을 때 더위를 잊게 하는,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감회가 몰려왔다.
‘1920년, 봉오동 전투 101년 만에, 장군님의 귀환.’
막연하던 모습이 현실로 다가왔다. 정부 내에서 독립운동 유공자를 모시는 일을 해왔지만, 이번에는 특히 반가움과 죄스러움이 교차했다. 벅찬 가슴을 진정시키고 엄숙한 마음으로 흉상을 마주하며 고개를 숙였다. 그리고 스스로 되뇌었다. “이제야 모시러 왔습니다.”
가난한 농부의 아들로 태어나 의병에서부터 대한독립군 총사령관에 이르기까지. 봉오동 전투 승리의 주역, 불패의 전설, 하늘을 나는 장군, 백두산 호랑이, 강제 이주된 고려인 동포들의 구심점 등 홍범도 장군 앞에는 수많은 수식어가 따라 다녔다. 그 많은 역경 속에서 만주 벌판을 누비며 일제와 치열한 전투를 치르고, 머나먼 타국 카자흐스탄까지 강제 이주되는 역경을 감내했을 홍범도 장군과 동포들을 생각하니 목이 저절로 메었다.
우리 민족의 자부심이던 장군의 유해를 수습하고 귀국길에 오르고서야 안도하게 됐다. 오랜 세월 곁을 지켜준 고려인 동포들에게 감사의 마음을 전하며 잡았던 손, 유해 봉환에 협조를 아끼지 않은 카자흐스탄 정부 관계자들과의 만남, 조국산천으로 귀환하는 과정 하나하나가 아직도, 앞으로도 가슴을 뜨겁게 채울 것 같다. 2019년 4월 문재인 대통령과 카심조마르트 토카예프 카자흐스탄 대통령의 정상회담에서 유해봉환 협조를 요청한 지 2년 4개월 만이다. 장군은 1943년 10월 25일 조국 광복을 끝내 보지 못하고 생을 달리하셨지만 제76주년 광복절을 맞아 ‘봉오동 전투 101년 만에 영웅의 조국 귀환’이라는 결실을 맺었다.
“독립운동가 한 분 한 분을 기억하는 것이 우리 스스로의 긍지와 자부심을 일깨우는 일입니다.” 문 대통령이 지난해 3·1절 경축사에서 홍범도 장군 유해봉환 소식을 국민들에게 전하며 한 말처럼 이번 유해봉환은 그의 생애와 업적, 조국과 민족을 사랑하는 애국애족(愛國愛族) 정신으로 국민의 긍지와 자부심을 일깨우는 의미 있는 계기가 될 것이다. 더 나아가 일제강점이라는 암울한 역사를 극복하고 조국의 자주독립이라는 희망의 역사를 썼던 시대정신은 오늘을 사는 우리가 계승·발전시켜야 한다. 이는 코로나19를 비롯해 당면한 도전과 과제를 딛고 일어서 더 평화롭고 더 번영된 미래 대한민국을 열어가기 위한 국민통합의 디딤돌이 될 것이다.
‘보훈’ 가치 확산을 책임지고 있는 국가보훈처장으로서 홍범도 장군의 위업을 기리면서 숭고한 희생정신과 애국심이 어제의 역사가 아니라, 살아 숨쉬는 오늘의 역사가 되도록 모든 노력과 정성을 다할 것을 다짐한다. 평범한 사람들의 용기가 하나둘 모여 민족의 위대한 승리와 희망이 됐던 자랑스러운 역사를 가슴에 새기게 되는 8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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