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칼럼/유재동]‘위드 코로나’, 뉴욕의 경우

  • 동아일보
  • 입력 2021년 8월 17일 03시 00분


일률적 규제보단 유연하고 탄력적인 대응
국민에게 희생 강요하는 방역은 한계 분명

유재동 뉴욕 특파원
유재동 뉴욕 특파원
백신을 잔뜩 쌓아놨다는 자신감인지 요즘 뉴요커들을 보면 팬데믹이라는 단어를 완전히 잊고 사는 듯하다. 음식점과 술집은 손님들로 북적이고 쇼핑몰 등 실내에서도 ‘노마스크’로 다니는 사람이 더 많다. 도심에는 뉴욕의 명물인 이층버스가 관광객을 가득 싣고 다닌다. 겨우내 닫혀 있던 기념품 숍들도 일제히 문을 열었다.

바이러스의 확산 속도만 보면 뉴욕의 이런 분위기는 선뜻 이해하기 힘들 수 있다. 맨해튼의 10만 명당 하루 확진자는 20명 안팎으로 서울보다 서너 배는 더 많다. 그러나 전체 주민의 3분의 2가 백신 접종을 마쳤고, 할렘 이남 대부분의 지역은 접종률이 80∼90%에 이른다. 그러다 보니 중증 환자가 드물고 사망자가 한 명도 보고되지 않는 날도 상당히 많다. 바이러스를 잘 관리하면서 일상을 회복할 조건이 갖춰진 것이다.

‘위드(with) 코로나’ 단계에 들어선 뉴욕의 방역은 한국과 여러모로 다르다. 우선 유연성이 있다. 이곳에선 몇 명 이상은 못 모이게 하거나 영업시간을 제한하는 식의 일률적인 규제를 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 반대로 사람들이 안전하게 생계를 이어갈 수 있게 다른 규제를 완화했다. 지난해 팬데믹으로 차량 통행이 급감하자 음식점들에 차로 한 개를 내어 주고 야외석을 마련하게 한 것이 대표적이다. 또 공연과 전시를 모두 금지하는 대신 당국은 야외공간을 활용해 즉석 콘서트를 열 수 있게 배려했다. 기업들도 전례 없는 재택근무 옵션을 부여해 직원들의 안전한 근무를 보장했다.

규제가 굳이 필요하다면 이를 거부하는 이들에게도 빠져나갈 구멍을 준다. 뉴욕시는 30만 명에 달하는 시 공무원에게 백신 접종을 의무화하면서 그게 싫은 사람들에겐 매주 코로나19 검사를 받는 대안을 줬다. 음식점도 이번 주부터 백신 맞은 사람만 입장이 가능하지만 야외 좌석은 미접종자에게도 개방을 허용한다. 이처럼 개인에게 방역 수칙을 강요하지 않는 대신 뉴욕은 백신 맞은 사람을 상대적으로 우대해 다른 이들의 접종을 유도하는 절묘한 방법을 택했다. 백신 접종자 전용석을 설치한 프로야구장의 모습은 모든 관중의 입장을 금지한 한국에선 볼 수 없는 풍경이다.

취약계층은 선택과 집중을 통해 충분히 지원한다. 먼저 팬데믹으로 쏟아진 수많은 실업자는 정부가 실업급여를 대폭 올려 구제했다. 집세를 내지 못하는 임차인들도 전에 없던 ‘퇴거 유예’ 조치로 길거리에 내몰리는 것을 막았다. 한국처럼 자영업자들의 생업을 제한하고 이를 제대로 보상하지 않는 등 특정 계층의 일방적인 희생을 강요하지 않는다. 물론 이런 느슨한 방역 원칙이 사람들의 경각심을 약화시켜 확진자를 더 늘리는 결과로 이어진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하지만 1년 반이 지나도 사태의 끝이 안 보이는 상황에서 언제까지나 방역을 내세우며 시민들의 기본권과 경제활동을 막을 수는 없다고 판단한 것이다.

우리 정부는 아직 ‘위드 코로나’ 전환이 불가능한 이유로 백신 접종률이 충분치 않다는 점을 든다. 맞는 말이다. 미국도 한국 수준의 접종률로 이 정도의 일상 회복을 강행했다면 그 결과는 어땠을지 상상하고 싶지 않다. 하지만 이는 결국 우리가 백신 확보를 소홀히 해서 스스로 ‘영원한 4단계’의 굴레에 빠졌다고 자인한 꼴이나 다름없다. 현재 서울은 뉴욕보다 확진자가 훨씬 적지만, 시민들의 행복도는 낮고 방역 스트레스는 매우 큰 편인 것 같다. 국민들의 이런 희생에 어떻게 부응해야 할지 이 정부는 고민해야 한다.

#위드 코로나#뉴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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