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화는 때로 허무맹랑하게 들리지만 상상을 통해 진실을 담는 일종의 그릇이다. 미당 서정주의 산문시집 ‘질마재 신화’에 나오는 ‘신선 재곤이’는 그 그릇이 어떻게 만들어지는지 아주 흥미롭게 보여준다.
전북 고창 질마재 마을에 “땅 위에 살 자격이 있다”는 의미에서 재곤(在坤)이라 불리는 앉은뱅이가 살았다. 기어 다니는 모습이 거북이를 닮은 사람이었다. 그는 멍석이나 광주리를 절어 팔았지만 입에 풀칠하기도 힘들었다. 그래서 사람들은 그에게 거북이처럼 마을을 돌아다니며 “밥을 빌어먹고 살 권리”를 주었다. 밥도 주고 옷도 주고 불도 주었다.
그런데 언제부턴가 그가 보이지 않았다. 뭔가 잘못된 게 분명했다. 마을 사람들은 한동안 마음이 무거웠다. 그러다가 어떤 노인이 말했다. “재곤이는 생긴 게 꼭 거북이같이 안 생겼던가. 거북이도 학이나 마찬가지로 목숨이 천년은 된다고 하네. 그러니, 그 긴 목숨을 여기서 다 견디기는 너무나 답답하여서 날개가 돋아나 하늘로 신선살이 하러 간 거여.” 그때부터 재곤이는 신선이 되고 신화가 되었다.
사람들은 편안한 시절에는 그에게 너그러웠지만 자기 가족도 건사하기 어려운 시절이 닥치자 귀찮아하고 드러내놓고 냉대했을지 모른다. 무관심과 외면이 그를 죽음의 벼랑으로 내몰았을 것이다. 그들은 시간이 지나서야 그가 사라지고 없다는 것을 알았다. 너무 미안했다. 천벌을 받을 것 같았다. 죄의식이 그들의 마음에 내려앉았다. 그렇다고 드러내놓고 얘기할 수도, 후대에 사실대로 전할 수도 없었다. 그래서 택한 것이 상상이 가미된 신화였다. 그가 신선이 되어 하늘로 갔다는 이야기를 만들어내면서 그를 기억하고 애도하며 미안한 마음과 죄의식을 조금이나마 덜어내고자 했다.
그의 옆구리에 날개를 달아주고 신선으로 만든 것은 질마재 공동체의 양심과 윤리였다. 다 그렇지는 않지만 신화는 종종 이런 식으로 공동체의 진실을 담아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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