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과 내일/이진영]‘조국이 예수’라는 착각의 쓸모

  • 동아일보
  • 입력 2021년 8월 19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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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경심 김경수 한명숙 판결 부정하는 여권
그들만의 착각의 대가, 왜 모두가 치러야 하나

이진영 논설위원
이진영 논설위원
그들만의 믿음은 흔들리는 법이 없다. 불법 정치자금을 받아 실형을 살고 나온 한명숙 전 총리는 “사법 농단의 피해자”다. 김경수 전 경남도지사는 드루킹 댓글 조작으로 대법원에서 2년형을 받았지만 “그의 진정성을 믿는다”고 한다. 조국 전 장관 아내 정경심 씨가 자녀 입시 비리와 사모펀드 불법 투자로 징역 4년을 선고받자 “조국은 십자가 진 예수”가 됐다.

자기기만은 꽤 쓸모가 있다. 이스라엘의 역사학자 유발 하라리는 인간이 진실을 외면하는 이유로 세 가지를 꼽았다. 첫째, 진실은 고통스럽다. 친노의 대모, 친문의 적자가 그럴 리 없다고, ‘꿈의 노무현’ ‘운명의 문재인’과 함께 성(聖) 삼위일체를 이루는 ‘사명의 조국’은 그런 사람이 아니라고 속는 게 마음 편하다. 둘째, 적들로부터 우리를 구별 지으려면 보편적인 진실이 아닌 우리만의 믿음이 필요하다. 민주화의 주역, 촛불혁명의 도구로서 DNA부터 다른 우리는 적폐 세력 따위가 재단할 수 있는 대상이 아닌 것이다. 셋째, 다들 아니라고 할 때 편들어줘야 충성심을 인정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충성의 대가는 달고 불충의 열매는 쓰다. 금태섭 전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조국 전 장관에게 “젊은 세대에게 사과해야 한다”고 했다가 당내 경선 탈락과 징계라는 ‘이중 처벌’을 받았다. 반면 ‘조국 수호’를 위해 ‘개싸움’을 한 김남국 의원은 전략 공천으로 의원 배지를 달았다. 그가 진짜 조국 가족이 무죄라고 믿었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권경애 변호사는 ‘무법의 시간’에서 정 씨 기소 후 김 의원(당시 변호사)이 이렇게 말했다고 썼다. “정 교수님 위조하신 거 같아요. 사모펀드도 관여하셨고. (조국) 후보 사퇴하셔야 할 것 같아요.”

그래도 제 스타일 구겨가면서까지 저리 해야 하느냐고? 뭘 몰라서 하는 소리다. 그럴수록 “자기 평판은 돌보지 않고 내 편을 들어주다니” 하며 보상하고픈 마음도 커진다. 독재국가 엘리트의 행태를 비교 분석한 영문 논문 ‘컬트 생산의 메커니즘’에 따르면 충성 경쟁은 ‘아첨 인플레’를 낳는다. 중국 마오쩌둥 시절엔 다들 마오 배지를 달았는데 더 큰 배지 달기 경쟁을 벌이더니 급기야는 배지를 몸에 직접 다는 사람까지 나왔다. ‘조국을 안중근 의사에 빗대기’(추미애) “골고다 언덕길을 조국과 가족이…”(황교익) “조국 교수 보며 무릎 꿇고 살기보다 서서 죽기 원한다는 노랫말이…”(김의겸) “조민은 제인 에어”(진혜원) 등은 살갗에 단 마오 배지 같은 것이다.

문제는 착각의 보상으로 저들끼리 권력의 꿀을 빨면서 그 대가는 온 국민이 치르게 한다는 사실이다. 나라가 두 쪽 나 내전을 치르며 겪는 고통은 말할 것도 없다. 상상속 믿음은 현실로 침입해 정책마저 왜곡한다. 조국 자녀 입시 비리가 드러나자 “제도 탓”이라며 입시 정책을 뒤집었다. 조국 수사를 강행하는 검찰 힘을 검찰개혁이라며 무리하게 빼놓는 바람에 한국토지주택공사(LH) 부동산 투기 의혹 수사가 난항을 겪고 있다. 조국 수사 와중에 추진한 수사유출 금지 규정, 권력의 무오류 신화를 위협하는 언론 입막음용 법안으로 국민의 알 권리는 묵살당할 위기다. 여권 거물들이 잇달아 유죄 판결을 받자 이제는 사법개혁을 하겠다고 나섰다.

누구나 나만의 의견과 믿음을 가질 수 있지만 나만의 사실을 주장할 권리는 없다. 나만의 사실이 타인에게 피해를 준다면, 그것이 174석 거대 범여권만 믿는 사실이라면 더더욱 그러하다.

#조국이 예수#착각#정경심#여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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