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권 여당의 언론중재법 폭주에 우려와 비판이 쏟아지고 있지만 청와대는 “국회 일”이라며 입을 다물고 있다. 청와대 고위관계자는 어제 “3권 분립 국가에서 국회가 심도 있게 논의해 결정할 사안”이라고 했다. 며칠째 이런 입장만 되뇌고 있다. 무책임한 침묵이자 방조다.
문재인 대통령은 2017년 최순실 게이트 보도에 대해 “언론의 침묵은 국민의 신음으로 돌아온다는 사실을 우리는 뼈저리게 깨달았다”는 글을 페이스북에 올리기도 했다. 더불어민주당이 25일 국회 본회의 통과를 목표로 밀어붙이고 있는 언론중재법 개정안이야말로 언론의 침묵을 강요하는 독소 조항으로 가득한 법이다.
우리나라는 언론중재위원회를 통한 정정보도 청구 및 반론권을 보장하고 있는 데다, 형법상 명예훼손죄를 통해 악의적인 보도의 책임을 물을 수 있도록 하고 있다. 그런데도 언론 보도로 인한 손해액의 5배까지 ‘징벌적’ 배상을 요구할 수 있게 하면 보도는 심각하게 위축될 수밖에 없다. 더구나 징벌적 손배의 대상이 되는 허위·조작 보도의 ‘고의 또는 중과실’ 규정 자체가 지나치게 모호해서 사사건건 보도 내용에 시비가 걸릴 소지가 크다. 고의·중과실의 입증 책임이 언론사에 있는지, 피해자에게 있는지에 대해서도 해석이 분분하다.
지금 21대 국회의 범여권 의석수는 180석에 달한다. 야당은 본회의 필리버스터(무제한 토론)로 대응하겠다고 하지만 여당이 마음만 먹으면 쉽게 무력화시킬 수 있다. 그런데도 청와대는 “국회가 결정할 사안”이라고 하니, 입법부 권한을 존중하는 듯한 태도를 취하며 속으론 여당 뜻대로 처리하라는 메시지 아니고 뭔가.
문 대통령은 최근 한국기자협회 창립 57주년 메시지에서 “언론 자유는 민주주의의 기둥”이라며 “누구도 흔들 수 없다”고 했다. 여당이 강행 처리하려는 언론중재법 개정안이 바로 언론 자유를 흔드는 차원을 넘어 노골적으로 억압하려는 내용이다. 이를 그대로 두면 문 대통령은 언론 자유를 심각하게 후퇴시킨 정권의 대통령으로 기록될 수 있음을 알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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