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몽시대 이후 빈은 음악사에서 가장 중요한 곳이었다. 하이든, 모차르트, 베토벤이 고전주의의 금자탑을 쌓아 올린 곳도, 슈베르트, 브루크너, 브람스의 낭만주의를 거쳐 세기말 말러, 볼프 등에 이어 마침내 쇤베르크와 신(新)빈악파가 무조주의의 시대를 연 곳도 모두 빈이었다.
숱한 음악가와 음악이 있었음에도 이 중 가장 빈다운 게 뭘까 묻는다면 빈 사람들은 주저 없이 왈츠를 떠올릴 것이다. 그리고 그 대표 음악이 요한 슈트라우스 2세(사진)의 ‘아름답고 푸른 도나우’다. 빈 사람들의 ‘최애곡’인 이 작품은 오스트리아 제2의 국가로 불린다. 그래서인지 음악비평가 한슬리크는 이 곡을 “가사 없는 오스트리아의 애국가”라고 했다. 이 작품은 유명한 새해 축제인 빈 신년 음악회의 고정 앙코르곡으로 자리 잡은 뒤 세계적으로 사랑받게 됐다.
1867년 오스트리아는 프로이센과의 전쟁에서 허망하게 패했다. 그 결과 미리 잡혀 있던 모든 사육제(부활절 금식 기간 시작 전의 카니발) 일정이 취소되고 만다. 특히 빈 사람들이 좋아하는 대무도회가 취소되자, 빈의 남성합창단은 원래의 바보 광대극 대신 가곡의 밤을 준비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왈츠 없이 사육제를 보내다니! 아무리 전쟁 중이라지만 빈 사람들에게는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그들은 급히 요한 슈트라우스 2세에게 남성 합창용 왈츠를 의뢰한다. 슈트라우스는 주문을 받고 가사에다 두 개로 딱딱 끊어져 나눠 부르기 좋은 멜로디를 입힌다. “빈 사람들아, 기뻐해! 서광이 비치잖아, 사육제 시작되니, 시간을 거슬러, 슬픔을 거슬러 참아보아야 다 소용없으니 즐겁게 보내자, 우리!” 이러한 가사는 과거의 영광을 잃고 서서히 몰락해 가는 빈의 정경을 반영하지만, 즐거움의 때를 포기할 수 없다는 현세적 낙천성의 표시이기도 하다. 현실의 어려움을 이겨내는 데 예술이 꼭 필요하다는 것이다.
한편 슈트라우스는 파리 박람회를 맞아 곡을 급히 써야 했는데 시간이 촉박해 합창곡으로 써 놓은 도나우 왈츠를 가사 없는 오케스트라용 왈츠로 편곡하게 된다. 그런데 이 관현악 버전이 다시 대박을 터뜨리고 만다. 우아하고 매끈하지만 동시에 친근한 민요의 요소를 가지고 있는 이 곡은 금세 명곡에 반열에 오른다. 관현악법 역시 효과적이다. 빈 왈츠는 단순한 ‘쿵짝짝’ 리듬이 아니다. 첫 강박에 무게가 실리고 뒤따르는 약박은 끌리듯 조금 늦게 떨어진다. 실제 춤 동작의 스텝을 반영한 것이다. 빈 필하모니는 이러한 움직임을 가장 잘 표현하는 악단으로 이름이 높다. 곡을 끌어가는 힘은 물론이거니와 마지막 장면에서 곡을 느리게 하고 플루트 솔로와 부드러운 호른을 통해 곡의 주제를 부각하는 것 역시 뛰어나다. 브람스가 이 왈츠를 너무나 부러워한 나머지 ‘사랑의 노래와 왈츠’라는 왈츠로 된 성악 앙상블 가곡집을 쓰게 됐을 정도다.
도나우강이 가장 푸르른 이 시절, 힘겨운 시대를 이겨내는 빈 사람들의 낙천성을 한번 떠올려 보자. 음악은 삶이 어려울 때 더 깊은 의미로 다가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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