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와 잘 놀아주던 아빠였다. 상담을 하다가 궁금한 것이 있다며 질문을 했다. 아이가 조립식 장난감을 사달라고 해서 사줬단다. 그런데 설명서를 보고 차근차근 하자고 아무리 말해도 듣지 않고 자기 마음대로 하더니 결국 망쳐버렸다고 한다. 그래 놓고 오히려 아빠 때문에 망쳤다며 아이가 떼를 쓴 것이다. 아이의 황당한 행동에 아빠는 순간 욱해서 “알았어! 알았어! 나도 너랑 이제는 안 놀아. 다 갖다 버려!”라고 소리를 질러버렸다. 아이는 당연히 울고불고 난리가 나고, 아내도 장난감 하나도 못 만들어주고 애를 울리느냐며 핀잔을 주었다. 그 아빠는 이럴 때 도무지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고 했다.
아이가 해서는 안 되는 행동을 하면 바른 지침을 가르쳐주는 것이 맞다. 하지만 더 중요하게 생각해야 하는 게 있다. 놀이 상황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아이와의 즐거운 상호작용’이라는 것이다. 조립식 장난감을 완성시킨 마지막 성과물이 아니다.
아이들은 자기가 하기 어려운 것을 굳이 하겠다고 우기기도 한다. 그럴 때는 바로 다음 단계까지만 미리 얘기를 해주고 좀 기다려야 한다. “그림 보면 이렇게 생겼는데, 아빠 생각에는 이렇게 하면 안 붙을 것 같은데?” 정도 말해준다. 아이가 “아니야 맞아. 내가 할 거야.” 그러면 “오케이. 네가 해 보는데, 이게 잘못 붙이는 것이면 그다음 과정이 잘 안 될 수도 있어. 그때 화내면 안 된다?” 그렇게 말하고 기다려 준다. 기다리면서 “아빠 도움이 필요하면 얘기해”라고 한다. 이렇게 해 주면 일이 잘 안 풀려도 아이는 자존심이 덜 상한다. 제 손으로 하기 어려우면 아빠에게 순순히 도와달라고도 할 수 있다.
아이에게 무언가 가르치고 싶다면 자식이라도 자존심을 상하게 해서는 안 된다. 자존심이 상하면 상대의 지시를 따르기 싫어진다. 그 사람한테 뭐든 배우기 싫어진다. 그런데 대부분의 아빠는 “야, 그거 아니잖아. 그렇게 하면 안 된다고! 내놔 봐! 아빠가 잘 만들어 준다니까!” 하면서 아이가 만들고 있는 것을 뺏는다.
아이가 혼자서 하다가 결국 한쪽 날개를 망가뜨렸다면, 이때도 “너 때문에 망가졌잖아!”라고 할 일이 아니다. “이것은 망가진 거니까 이렇게 두자. 반대쪽 날개는 설명서 순서대로 한번 해보자. 그러면 어떻게 바뀌나 보자.” 그렇게 해서 반대쪽 날개는 제대로 만든다. 아이는 다시 망가진 날개를 가리키며 “이것도 고쳐 놔!”라며 고집을 피울 수 있다. 그럴 때는 좀 분명하게 “이것은 딱 붙어 버려서 떼어지지 않아”라고 말해 준다. 그래도 아이가 울면서 “아니야, 원래대로 해놓으라고!”라며 떼쓸 수 있다. 이때 “네가 그랬잖아. 아빠가 그랬어?” 하면서 속상한 아이 마음에 기름을 부으며 싸움을 해서는 안 된다. 어떤 아빠는 그 와중에 아이의 떼를 잡겠다며 “그러니까 아빠 말을 들었어야지. 이러려면 다시는 장난감 사달라고 하지 마”라고 엄하게 말하기도 한다.
이런 상황에서의 정답은 “좀 아쉽기는 한데, 네가 해 놓은 것도 멋져. 하지만 박스에 있는 이 모양대로 꼭 만들고 싶을 때는, 설명서대로 하는 것이 좋은 방법이긴 해”라고 말해주는 것이다. “네 상상 속에 있는 모양대로 만들고 싶을 때는, 마음대로 좀 시도해 봐도 돼. 그럴 때는 이 그림대로 모양이 나오지 않을 가능성이 커. 고장이 날 수도 있고. 그래도 재미있게 놀면 되지 않겠니?”라고 말해 줘도 좋다.
아이가 제 마음대로 해서 일이 잘못되었을 때, 큰 잘못을 한 것처럼 몰아붙여서는 안 된다. 마음이 약한 아이는 다음부터는 절대 그런 시도를 하지 않으려 한다. 무조건 “아빠가 해줘”라고 한다. 사실 장난감 조립하다 망치는 것이 뭐 그리 큰일인가. 얼마든지 시행착오를 해도 된다. 그런데 많은 아빠들이 뭔가를 끼우거나 오려서 만드는 조립품 앞에서 아이와 같은 수준이 된다. 아이와 똑같이 싸운다. 일단 만들기 시작하면 좋은 결과물을 만들어내는 데만 몰입한다. 가끔 보면 아이는 안중에 없다. 혼자 열심히 만드느라 아이와 상호작용도 안 한다. 만들어놓고는 그것을 가지고 놀아 주지도 않는다.
나는 가끔 그런 아빠에게 묻는다. “아버님이 장난감 조립 놀이 하시는 거예요?” 다들 아니라고 한다. 그러면 아이와 같이 해야 한다. 장난감은 장난감일 뿐이다. 그 시간을 얼마나 즐겁게 보내느냐가 중요하다. 날개가 하나면 어떻고, 두 개면 어떤가. 날개가 접히면 어떻고 안 접히면 또 어떤가. 아무 상관없다. 그 과정에서 아이가 ‘설명서가 있는 것은 설명서대로 해보는 것이 효과적이겠구나’를 배우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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