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흘 전 카불의 함락은 전 세계에 큰 충격을 줬다. 도망치듯 빠져나오는 슈퍼파워의 초라한 모습에 경악했다. 미국의 냉정한 변심에 동맹국들은 몸서리쳤다. 하지만 조 바이든 대통령은 아프가니스탄과 다른 동맹은 다르다며 철군을 후회하지 않는다고 했다. 그러면서 ‘아프간 이후’를 주목해 달라고 주문한다. “우리가 아프간을 떠나는 것에 누가 가장 실망하는가? 중국과 러시아다. 그들은 우리가 계속 아프간에 매달려 있기를 바란다.”
많은 이들이 카불에서 1975년의 사이공을 떠올렸다. 사실 베트남 패전이 던진 충격파는 훨씬 컸다. 미국의 시대는 끝났다는 탄식이 이어졌다. 미국 사회 전반에 도덕적 냉소주의가 만연했고 지도층 역시 비관론에 빠졌다. 세계는 그 다음 무너질 도미노가 어디냐에 촉각을 곤두세웠다.
하지만 베트남의 굴욕 이후 15년, 미국은 동서 냉전에서 승리하며 세계 유일 슈퍼파워로 우뚝 섰다. 베를린 장벽이 무너졌고 동구권 전체가 흔들리면서 소련 제국이 해체됐다. 이라크를 상대로 한 전광석화 같은 걸프전쟁 승리는 미국의 부활을 알리는 불꽃쇼였다. 미국은 어떻게 베트남의 치욕을 전례 없는 승리로 만들었을까.
베트남 종전 이후에도 미국이 그 늪에서 빠져나오는 데는 시간이 꽤 걸렸다. 레이건 행정부 들어서야 온전히 소련과의 전방위 전략경쟁에 집중할 수 있었다. 허수아비 군대라고 조롱받던 미군을 재정비하고 ‘더러운 전쟁’이란 딱지가 붙은 비밀작전도 벌였다. 특히 전략가들은 소련 군사력의 실체를 면밀히 분석해 미소 간 숨겨진 국력의 차이까지 알아냈다. 이를 통해 미국의 상대적 우위를 찾았고 그것으로 소련의 열세나 약점을 공략했다.
무엇보다 미국은 가뜩이나 과도한 군비 지출로 허덕이던 소련에 전략 핵 증강과 전략방위구상(SDI) 같은 장기 경쟁전략을 들이밀면서 엄청난 재정적 부담을 강요했다. 그 결과 소련을 경제적으로 탈진시켰다. 소련의 자업자득도 한몫했다. 베트남 이후 소련은 아프리카와 중미 지역에서 대리세력들의 전쟁을 지원하며 과도한 확장에 나섰다. 그 정점이 아프간 침공, 10년의 수렁에 발을 들인 것이었다.
바이든이 제시한 ‘아프간 이후’가 카불의 치욕으로부터 시선을 돌리기 위한 것만은 아닐 것이다. 이제 미국은 더 큰 싸움에 집중하려 한다. 그 상대는 소련 같은 노쇠한 제국이 아니라 새롭게 떠오른 도전자 중국이다. 중국이라고 베트남 이후 소련의 교만이 낳은 역사를 모를 리 없다. 하지만 시진핑 시대의 중국은 분명 달라졌다.
중국은 더 이상 힘을 숨기고 때를 기다리지 않는다. ‘100년 만의 세력균형 대변동기’라며 자신감을 한껏 드러내고 있다. 관영매체는 “아프간은 대만의 운명에 대한 전조”라며 ‘대만 흔들기’에 나섰다. 정작 놀라운 것은 대만의 차분한 반응이다. 이미 미국의 버림을 받았던 아픈 역사 때문일까. 정부는 물론 정치권 모두 “우리 스스로 지켜야 한다”며 한목소리를 내고 있다.
아프간 이후 격화될 패권경쟁 속에 한국은 더욱 괴로울 것이다. ‘한미동맹과 한중협력의 조화’는 결코 쉽지 않은 일이다. 미국이냐 중국이냐는 단순한 선택의 문제가 아니다. 정교하고 민첩한 생존전략을 만들어야 한다. 그런데도 동맹이냐 자주냐는 부박한 주장만 횡행한다. 미국의 전략가들도 소련의 급작스러운 붕괴를 예측하진 못했다. 단지 그들은 해야 할 일을 했을 뿐이고, 그 뒤엔 혜안을 채택한 지도자와 그를 뽑은 국민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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