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와대 조직을 많이 축소하고 직원들의 직급도 낮출 것이다. 국정은 내각 중심으로 하고 대통령비서실은 조정 기능으로 역할을 한정하려 한다.”
지금 뛰고 있는 야당 주자들 공약이 아니다. 13년 전인 2008년 1월 이명박 전 대통령이 당선인 신분으로 신년 기자회견을 열었을 때 다짐한 말이다. 기자회견 한 달 뒤, 2008년 2월 25일 이명박 정부가 출범했다.
당시 실세로 통했던 정두언 전 의원은 이 전 대통령을 만나 청와대 축소 방안을 보고했다.
“청와대에서 각 부처의 인사를 직접 챙기면 장관이 무력화됩니다. 장관이 바지사장이 되고 관료들이 청와대의 눈치만 보게 되면 전 관료사회의 역할이 부실해질 수 있습니다.”
정 전 의원은 이 같은 문제점을 설명하며 청와대 인사수석실 폐지를 건의했다. 그러나 이 전 대통령의 생각은 이미 달라져 있었다. 이 전 대통령은 “인사수석을 없애면 이 사회 곳곳에 침투한 좌파세력들은 어떻게 척결하느냐”는 취지로 답했다고 한다.
전(前) 정부에서 정부 및 산하 기관 곳곳에 자리 잡은 친노(친노무현) 인사들을 내보내고, 새 정부 인사들을 그 자리에 다시 배치하려면 청와대가 인사수석실을 통해 각 부처와 산하 기관 인사를 직접 챙겨야 한다는 뜻이었다. 결국 이 전 대통령은 인사수석을 없애는 대신에 인사비서관을 두었다. 직급은 낮아졌지만 내용적으로 바뀐 것은 없었다.
대선 때면 늘 들리는 공약 중 하나가 청와대 비서실 축소다. 후보들은 앞다퉈 ‘제왕적 대통령제’의 폐해를 언급하며 자신이 대통령이 되면 대통령비서실의 기능과 역할을 확 줄이고 장관들에게 실질적인 의사결정 권한과 인사권을 주겠다고 약속한다.
말뿐이다. 문재인 대통령도 4년 전 취임사에서 “지지 여부와 상관없이 삼고초려해서 유능한 인재에게 일을 맡기겠다”고 약속했다. 하지만 문재인 정부는 집권 기간 내내 진영과 이념, 즉 ‘네 편’ ‘내 편’을 따지는 인사에 의존했다. ‘캠코더(대선 캠프+코드+더불어민주당)’ 인사라는 조어까지 만들어졌다.
대다수 국민은 물론이고 여러 정치권 인사들도 인사수석실이 원래부터 청와대에 있던 곳으로 알고 있는 경우가 많다. 인사수석은 2003년 출범한 노무현 정부 때 처음 생겼다. 그전까지 민정수석이 독점한 인사에 대한 추천·검증 기능을 분리하겠다는 명분이었다. 처음에는 장관 등 고위직만을 대상으로 했지만 지금은 정부 각 부처는 물론이고 공기업과 산하 기관 간부 인사에 이르기까지 어지간한 자리엔 거의 대부분 청와대의 뜻이 반영된다.
노무현 정부 이후 몇 번의 정권 교체와 인적 청산을 거치면서 대선 때가 되면 각 주자들 캠프로 수많은 ‘뜻있는’ 인사들이 몰려들고, 집권하면 전리품으로 자리를 나누는 풍경이 이제 대선의 기본 공식처럼 됐다. 그 첨병이 인사수석실이다.
대다수가 ‘제왕적 대통령제’의 폐해를 우려한다. 인사 기능을 청와대가 직접 맡기 시작하며 생긴 과도한 인사권 행사가 부작용을 더욱 키우고 있다. 인사수석실을 통해 각 부처와 사회 곳곳에 뿌려진 낙하산 인사들은 옳고 그름이 아닌 청와대의 뜻과 지시에 따라 행동할 수밖에 없다. 근원적으로는 개헌을 통해 권력 구조를 바꿔야겠지만 일단 청와대 비서실 시스템을 바꾸는 것이 해법이 될 수 있다. 여야 후보들이 “측근 인사는 없다”는 원칙론적인 공약 말고, ‘인사수석실 폐지’ 같은 실질적인 방법론을 함께 약속하면 어떨까. 아니면 지킬 수 없는 탕평인사라는 약속을 아예 하지 말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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