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것(여행기)은 여행의 성공이라는 목적을 향해 집을 떠난 주인공이 이런저런 시련을 겪다가 원래 성취하고자 했던 것과 다른 어떤 것을 얻어서 출발점으로 돌아오는 것이다.”―김영하 ‘여행의 이유’ 중
나는 낯선 곳에 가서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고 익숙하지 않은 환경에 적응하는 것이 싫다. 매일 똑같이 반복되는 안정적인 삶을 살고 싶다. 하지만 내가 선택한 도배사라는 직업은 매번 새로운 환경으로 내던져지는 일이다. 길면 3개월, 짧게는 하루 이틀씩 일하고 또 다른 곳으로 이동하는 것이 끊임없이 반복된다. 새로운 출근길, 새로운 현장 풍경, 새롭게 만나는 사람들, 새로운 집 구조와 새로운 벽지. 벽에 벽지를 붙이는 것은 늘 같지만 그 외에는 모든 것이 변한다. 3개월씩 머무는 현장은 익숙해질 기회라도 있지만 그런 기회조차 생기기 전에 떠나야 하는 현장도 많다.
하지만 모든 현장에 동일한 것이 하나 있다. 일이 끝나면 내 자신에게 변화가 생긴다는 것. 그것은 초보 도배사인 내게 ‘성장’일 때가 많다. 도배 기술이 늘기도 하지만 새로운 환경 대처법을 배우고 적응하는 나만의 노하우도 생긴다. 동호수가 없는 현장의 낯선 길을 빠르게 기억하는 팁, 새로운 사람들 사이에서 주눅 들지 않기 위한 나만의 행동, 돌발 상황에 의연하게 대처하는 마음가짐 등. 일하기 위해 새로운 곳으로 가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환경에서 빠르게 적응하는 것 자체가 업무의 일부가 아닐까 생각하기도 한다.
어떤 현장에 언제 갈지 미리 알 수도 없다. 갑자기 다음 날 지방 출장을 가라는 연락을 받을 때도 있다. 미리 알려줄 수는 없었는지 따질 수도, 일정을 바꿀 수도 없다. 그저 서둘러 짐을 챙길 뿐이다. 이번 현장에서는 어떤 것을 얻게 될지 작은 기대를 하며.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