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도 축구선수 디에고 마라도나(1960∼2020)를 뛰어넘을 수는 없다. 마라도나는 일부 팬들에 의해 신(神)으로 모셔졌으니까. 1998년 열성 팬이 창시한 ‘마라도나교’의 교리는 축구와 마라도나에 대한 애정과 경외심을 담아 그를 숭배하는 것을 골자로 하고 있다.
아르헨티나를 월드컵 우승으로 이끌었던 마라도나는 축구 실력뿐만 아니라 많은 기행으로도 유명했고 마약과 알코올의존증으로 자주 구설에 올랐다. 그가 신으로까지 추앙받은 것은 선수로서 그의 재능이 극도의 경외심을 불러일으킬 정도였음을 보여주지만 인간으로서의 그에 대한 평가는 엇갈린다.
특정인들의 추앙을 받는 종교적 지위를 제외하면 가장 높은 세속적 지위에 오른 선수 출신 인물로는 라이베리아 대통령인 조지 웨아(55)를 들 수 있다. 선수 시절 힘과 탄력이 넘치는 공격수로 유명했던 그는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EPL)의 첼시와 맨체스터 시티에서 활약하는 등 유럽 리그에서 화려한 경력을 쌓은 슈퍼 스타였다. 유럽은 물론이고 고국의 광적인 팬들을 지닌 그는 2018년 대통령 선거에서 당선됐다.
어쩌면 내년쯤엔 선수 출신 대통령이 한 명 더 탄생할지도 모른다. 필리핀 대통령 후보로 거론되고 있는 매니 파키아오(43)다. 플라이급에서 시작해 슈퍼웰터급까지 8체급에 걸쳐 세계 챔피언을 지낸 그의 경력은 경이롭다. 그는 필리핀의 절대적 국민영웅이다.
파키아오는 2년 만의 복귀전을 치른 22일 세계복싱협회(WBA) 슈퍼웰터급 타이틀매치에서 챔피언 요르데니스 우가스(35·쿠바)에게 판정패했다. 필리핀 상원의원이기도 한 그는 내년 5월 필리핀 대선 후보로 나설 것으로 알려졌다.
많은 이들이 이 경기가 파키아오의 마지막 경기가 될 것이라고 예상했지만 파키아오는 선뜻 은퇴 선언을 하지 않았다. 그는 은퇴 여부에 대해 “모르겠다, 모르겠다”를 반복하며 “우선 가족과 함께 휴식한 뒤에 결정하겠다”고 말했다.
그는 경기 후 다음 달 대선 출마 여부에 대해 최종 입장을 밝히겠다고 말했다. 그가 대선에서 패하더라도 계속 복싱 선수로 뛴다면 경기를 통해 영웅 이미지를 회복할 기회가 생길지 모른다. 그에게 복싱은 인기를 유지하고 재기를 가능케 하는 발판이다. 나이가 40대 중반을 향해 가고 있지만 복싱 무대에서 내려오는 것이 쉽지 않은 모양이다.
누구나 정치에 참여할 수 있기에 그가 정치인으로 변신하는 것도 이상할 게 없다. 그의 출마에 대해서는 복싱과 아주 다른 분야인 정치 무대에서 과연 잘 해낼 수 있을까 하는 우려가 있다. 복싱이라는 한 분야에서 극도의 성실함과 자기극복을 통해 성취를 이룬 인물인 만큼 그 인간적 장점을 살려 잘 해낼 수 있으리라는 시각도 있다.
어느 쪽이든 그의 변신에서 연상되는 것은 스포츠라는 분야와 정치라는 분야의 대비이다.
파키아오가 정치인으로서 성공하려면 정치의 핵심인 이해관계 및 갈등의 조정 능력을 먼저 평가받아야 한다. 이 점에서 그의 능력은 좀 더 검증이 필요하다.
하지만 그는 정치권에 부족한 스포츠의 덕목을 활용할 수 있다. 스포츠는 명확한 규칙과 판정으로 ‘페어플레이’를 추구하며 과정과 결과에 따른 승복으로 화합을 추구한다. 정치의 목적도 화합과 국민 행복이겠지만 현실 정치의 부정적인 행태는 오랫동안 이해관계에 따라 옳고 그름의 잣대를 바꾸고 이해득실만 추구하는 ‘권모술수’의 이미지를 정치권에 심어왔다.
현실 정치에서 부족한 페어플레이 정신과 합리성, 도덕성 등의 덕목을 추구한다면 그가 정치 개혁에 나서지 못하리라는 법도 없다.
현실 정치에서 필요한 덕목들을 습득해 나가는 과정이 그가 정치인으로 성장해 나가는 과정이 될 것이다. 스포츠적인 가치를 잃어버리지 않는 것도 중요하다. 마라도나는 살아서 신으로 추대됐지만 세상을 떠났고 조지 웨아는 대통령이 됐지만 예전의 독재세력과 결탁했다는 비판도 받는다. 그 지위는 영원하지 않고 군림하는 자리도 아니다. 정치든 스포츠든 어느 쪽이든 부족한 덕목은 그를 보호해 주지 못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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