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백악관은 지난달 30일 북한이 영변의 5MW 원자로를 재가동한 정황이 포착됐다는 국제원자력기구(IAEA) 보고서에 대해 “잘 알고 있다”며 “한반도의 완전한 비핵화를 위한 긴급한 대화와 외교의 필요성을 강조한다”고 했다. 한미 공조 아래 북한의 핵·미사일 활동을 파악하고 있다는 한국 정부 반응과 크게 다르지 않다. 이인영 통일부 장관은 어제 “완벽한 조건이 갖춰지지 않아도 남북미가 마주 앉아 대화를 재개하는 것만이 유일한 해법”이라고 말했다.
한미의 반응에는 북한에 대한 경고는커녕 중단 요구도, 우려 표명도 없다. 한미는 오히려 대북 인도적 지원을 강조하며 “북한의 회신을 고대한다”고 했다. 미국은 아프가니스탄 철군 뒤처리에 매달리느라 북핵은 상황 관리에만 치중하고, 한국은 어떻게든 남북관계의 물꼬를 트고 북-미 대화를 성사시키는 데만 몰두하고 있다. 그러니 북한이 보란 듯 핵 증강을 과시하는데도 한미는 별일 아니라는 듯한 반응을 내놓고 있다.
이번 IAEA 보고서를 통해 플루토늄 생산 재개라는 새로운 변수가 드러났지만, 그보다 많은 핵무기 원료를 매우 은밀하게 생산할 수 있는 우라늄 농축 프로그램은 그간 아무런 중단 없이 계속돼 왔다. 이미 핵탄두 수십 개를 만들 수 있는 핵물질을 확보한 북한이다. IAEA는 영변 외에도 평양 인근의 강선에서 우라늄 농축으로 의심되는 지속적인 징후가 나타났고 평산 우라늄 광산에서도 채굴과 선광이 진행 중이라고 밝혔다.
이처럼 북한 핵무기는 더 쌓이고 더 정교해지고 있다. 그런데도 한미의 대북정책에서 압박과 제재는 사라졌다. 북한이 대화에 나오기만 기다릴 뿐 기존 제재의 이행을 강화하려는 노력도 없다. 북한은 대화를 거부하면서 거리낌 없이 핵 증강을 계속하고 있다. 앞으로 협상에 나서는 조건으로 더 큰 보상을 얻어낼 수 있다고, 이러다 핵보유국 지위도 인정받을 수 있다고 생각할지 모른다. 한미 대북정책에 대한 근본적인 재검토가 필요한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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