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과 내일/박중현]김제동 씨, 그 알바생은 행복한가요

  • 동아일보
  • 입력 2021년 9월 2일 03시 00분


체험으로 경제 배운 청년들
‘선택적 분노’ 허상 깨달아

박중현 논설위원
박중현 논설위원
공기업 취업준비생들이 모이는 인터넷 카페가 연 행사 때문에 ‘소셜테이너’ 또는 ‘폴리테이너’로 불리는 김제동 씨가 최근 곤욕을 치렀다. 여러 분야 전문가들과 대담 내용을 담은 책의 출판 이벤트로 카페 회원 100명에게 인생 상담을 해주겠다고 했더니 “이 사람이 취업에 대해 뭘 아냐”는 신경질적 반응이 쏟아진 것이다.

비대면으로 지난달 19일 열린 이벤트는 주최 측이 우려한 정치, 이념 갈등 없이 진행됐다고 한다. 그래도 몇 년 전까지 ‘공감’과 ‘힐링’의 아이콘이었던 그로선 청년들의 급변한 시선에 격세지감을 느꼈을 것이다. “목수의 망치와 판사의 망치는 가치가 같아야 한다”는 발언에 환호하던 청년들이 무료로 상담해 주겠다는데도 “입에 발린 소리로 위로하는 걸 고민상담이라고 할 거면 하지 말라”며 화를 냈다. 청년들의 속으로부터 뭔가가 크게 달라졌다.

김제동 하면 역시 ‘헌법 강의’다. 2016년 촛불집회에서 “국민은 행복을 추구할 권리를 가진다. 헌법 제10조 행복추구권입니다. 행복하십니까? (아니라면) 헌법 10조 위반입니다”면서 박근혜 정부 퇴진을 요구했다. 하지만 경제 강의도 많이 했다. 그해 크리스마스이브에 그는 광화문광장에서 최저임금 1만 원 인상의 당위성을 역설했다.

“그거 만 원 정도 돼야 사람이 좀 살 것 아닙니까. 우리 동네 아르바이트하는 ○○(여성 이름)라는 애가 있어가지고 ‘최저임금 만 원 되면 어떨 것 같아?’라고 했더니 행복할 것 같대요. 그거 못 해줄 이유 없지 않습니까. (중략) 지들끼리만 해 처먹어서 그렇습니다.” 낮은 최저임금을 재벌과 결탁한 부패 정부 탓으로 돌리는 그의 발언에 박수가 터져 나왔다.

현 정부는 임기 초 그의 기대에 충실히 부응했다. 2018, 2019년 2년간 30% 가까이 최저임금을 올렸다. 하지만 자영업자, 중소기업들이 직원을 줄이고 경제성장률이 뚝 떨어지자 당황해 2020년 2.9%, 2021년 1.5%로 급브레이크를 밟았다. 대선이 있는 내년 인상률은 5.1%로 다시 올라 시급은 9160원이 됐고 주휴수당까지 포함하면 1만1003원으로 1만 원을 넘긴다.

올해 6월 광주 카페 주인이 “진짜 서민의 삶을 1도 모르는 패션좌파들이 ‘시급 만 원도 못 줄 것 같으면 장사 접으라’는 소리를 거침없이 한다”며 분통을 터뜨렸지만 김제동 씨에겐 해당되지 않는 비판이다. 그는 일찍이 자영업자 부담을 걱정하며 친절하게 대책까지 제시했다.

“최순실 일가 10조 원 저거 뺏어오고, 대기업들 세금 좀 높이고, 고소득자들 세금 50% 정도로 조정하고, 국민 1% 정도만 세금 더 내서 우리 말고, 많이 버는 사람이 많이 내는 구조, 그게 조세(租稅) 아닙니까. (중략) 그들에게 세금 더 걷으면 돼요. (최저임금과 1만 원의 차이) 3000원 정도 국가에서 지급하면 되잖아요.” 10조 원은 어디 갔는지 몰라도 현 정부는 고소득층의 소득세, 법인세, 종부세율을 높였고 청년 ‘세금알바’를 수십만 개 만들었는데 만족하는 청년은 별로 없다. 각종 지원금을 주는데도 자영업자·중소기업주들은 청년 채용을 꺼린다.

내년 인상률 결정 전 나온 설문조사에서 청년을 포함한 구직자 10명 중 6명은 최저임금을 동결하거나 내려야 한다고 답했다. 높은 최저임금이 ‘내 일자리’를 위협한다는 걸 체험을 통해 깨달은 것이다. 청년들이 빠르게 경제에 눈을 뜨면서 김제동 씨는 ‘선택적 분노’와 ‘선택적 침묵’에 대가를 치르고 있다. 그래도 이것만은 그에게 꼭 물어보고 싶다. 그때 그 동네 알바생은 원하는 직장에 취직했는지, 혹시 그 알바 자리마저 잃은 건 아닌지, 현 정부 4년 3개월은 그에게 행복추구권을 돌려줬는지, 그 알바생은 지금 행복한지 말이다.

#김제동#알바생#취업준비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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