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아침, 아르메니아에서 온 유학생 레봉이 부스스한 얼굴로 연구실을 찾아왔다. 집으로 돌아가고 싶다고. 서울에 도착해 2주간 자가격리를 마친 지 얼마 지나지 않은 때였다. 레봉은 여자친구가 격리 기간에 이별을 통보했다고 했다. 그것도 도착한 지 이틀 후. 알고 보니 삼각관계였다고. 놀랄 일은 아니지만, 가끔 소설 속 이야기가 눈앞의 현실이 되기도 한다. 가족과 함께 있고 싶다는 말에 나 역시 흔들렸다. 그날 비행기 표를 예약해주었다.
나도 이런 상황에 놓인 적이 있었다. 논산 육군훈련소를 거쳐 전방에 배치돼 3년 군 생활을 시작할 즈음이었는데, 갑작스럽게 이별이 찾아왔다. 내게는 군대 생활보다 실연의 어려움 극복이 더 힘들었다. 세상엔 본인의 의지로 해결할 수 있는 일도 있지만, 시간이 지나야만 해결되는 일도 있다. 이런 일이 이 경우가 아닐까.
다른 이야기지만, 최근 원자핵의 삼각관계에 대한 이야기를 접했다. 원자핵은 양성자와 중성자로 이루어져 있다. 1932년 제임스 채드윅이 발견한 중성자는 양성자와 거의 동일한 질량을 가지면서도 중성인 입자다. 양성자와 중성자 사이에는 밀어내는 힘이 작용하기 때문에, 원자핵 내부에는 이 둘을 붙잡아두는 중간자라는 매개 입자가 있다. 이 중간자의 존재를 처음으로 예측한 사람은 일본의 이론물리학자 유카와 히데키였다.
1935년 유카와는 양자역학적인 불확정성 원리와 상대성 이론을 이용해 전기를 띠지 않고 양성자와 중성자를 핵 속에 잡아두는 중간자의 존재를 예측했다. 원자핵 속에서는 양성자와 중성자 사이를 왔다 갔다 하면서 두 입자를 핵 속에 붙잡아두는 핵력이 작용하는데, 이 핵력을 매개하는 입자의 존재를 이론적으로 예측한 것이다. 당시 물리학자들은 그저 재미있는 이야기로만 받아들였다. 그러다 1947년 유카와가 예언한 중간자가 발견됐고, 1949년 유카와는 중간자에 대한 예언으로 노벨상을 수상했다.
최근 핵력 외에 제3의 힘이 존재한다는 이론이 다시 주목받고 있다. 이 이론에 따르면 제3의 힘은 원자핵에 작용하는 결합력의 10∼25%에 해당하며, 중성자 이외에 중성자가 방출한 또 하나의 중성자 사이에 작용한다. 거대 항성이 일생을 마치면 질량 크기에 따라 블랙홀이 되거나 중심부에 고밀도 중성자가 모인 중성자별이 되는데, 어쩌면 이 이론은 중성자별의 중량 문제를 해결하는 이론이 될지도 모르겠다. 아직 확인되지 않았지만, 최근 예상외로 무거운 중성자별이 관측되기도 했다. 언제 결론이 날지 모르지만 이 이론에 대한 검증 실험은 계속되는 중이다.
세상을 사는데 물리학이 가르쳐주지 않은 일들이 태반이다. 아마 대부분 아닐까? 일상의 삶 속에 물리학이 끼어들기엔 현실의 시간은 가혹할지도 모른다. 아침 지하철을 타보면 휴대전화를 바라보는 사람들, 지쳐 졸고 있는 사람들이 많다. 생각해본다. 우리는 무엇을 통해 현실의 위안을 받을까. 가족, 친구…. 각자 삶의 위안을 얻는 그 나름의 방법이 있을 것이다. 집에 가는 지하철에서 이런저런 생각을 하면서 레봉이 삼각관계에서 벗어나 연구실로 되돌아오기를 기다려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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