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만큼 복잡한 감정을 불러일으키는 동물은 없을 것이다. 인간과 가장 가까운 동물이지만 욕설을 비롯해 나쁜 것에 대한 은유로도 널리 쓰인다. 마당 한편에서 집을 지키며 남은 음식을 먹고 자라다 복날 단백질 보충원으로 쓰인 기억이 그리 오래된 게 아니다. 최근 몇 년 사이 개는 가족의 일원이자 코로나19로 지친 사람들에게 위로를 주는 소중한 존재로 부각되고 있다. 구석기시대 얼어붙은 들판을 헤매며 인간을 해치기도 했던 무서운 늑대가 인간의 친구가 되기까지 그 수만 년의 역사를 살펴보자.》
5만 년이 넘은 동반자
늑대가 개로 바뀐 과정은 전 세계 고고학자들의 큰 관심거리다. 최근 연구를 종합하면 사피엔스의 등장과 함께 인류는 약 5만 년 전부터 세계 곳곳에서 동시다발적으로 늑대를 길들여 함께 살았다고 한다. 대부분 중간에 멸종됐고, 지금의 개는 약 1만5000년 전 빙하기가 끝날 당시 유럽에서 살던 회색늑대를 길들인 것에서 그 시작을 추정할 수 있다. 이때부터 사람들은 개와 동고동락했다. 독일 베를린 오버카셀에서 발견된 1만4000년 전 무덤에서는 남녀 사이에 어린 강아지도 함께 발견됐다. 태어난 지 5개월 남짓한 작은 종이었는데, 뼈에 치명적인 결함마저 있었다. 부부는 성치 않은 강아지를 살펴 키우다 결국 죽을 때까지 함께 데려간 것이다. 이스라엘에서 발견된 1만3000년 전 무덤에서도 젊은 여성이 한 손에 반려견을 잡고 묻혀 있었다. 이처럼 개에 대한 인류의 사랑은 갑자기 나온 것이 아니다. 빙하기 시절부터 이어져온 사피엔스의 오랜 전통이었다.
인류는 역사 속에서 수많은 동물과 함께했다. 왜 유독 개가 인간 사회에서 이렇게 특별한 대접을 받게 됐을까. 최근 고양이도 반려동물로 많은 인기를 끌고 있지만 고양이가 인간과 함께한 것은 도시 발달 이후로, 6000년 남짓 된다. 왜 개가 반려동물로 선택됐는가에 대해서는 많은 논쟁이 있지만, 적어도 한 가지는 분명하다. 개는 인간의 사냥감으로 적절하지 않다는 것이다. 육식동물인 늑대에서 분화했으니 인간에게 아주 위험한 동물이었다. 반면 말이나 소처럼 고기가 많은 것도 아니요, 양이나 염소처럼 그 털이 좋은 것도 아니니 굳이 사냥할 필요가 없었다.
하지만 개에게는 특별한 장점이 있으니, 사냥에 유리한 후각과 민첩성이 그것이다. 게다가 인간과 사냥감을 공유했기 때문에 함께 사냥에 나설 수 있었다. 지역마다 차이는 있지만 사냥개를 데리고 다니면 사냥 효율이 대략 50% 정도 증가한다고 한다. 그들은 ‘동업자’가 돼 혹독한 빙하기에 함께 살아남을 수 있었다. 개만 가지고 있는 장점은 또 있다. 바로 감수성이다. 후기 구석기시대, 추운 빙하기 시절 사람들은 흩어져 살면서 언제 죽을지 모르는 공포 속에서 사냥으로 연명했다. 그 끔찍한 고립감을 달래준 게 개였다. 인간을 제외한 동물 중 지능은 침팬지가 높지만 EQ, 감성지수는 개가 더 높다. 특히 사람처럼 서로 눈을 마주치는 습성이 있는 늑대는 인간의 감성을 위로해 줄 수 있었다. 그야말로 늑대의 치명적인 유혹이 인간의 역사를 바꾼 것이다.
생존을 위한 늑대의 선택
현대의 개와 늑대는 유전적으로 거의 비슷하다. 3년 전 동부 시베리아 동토지대에서는 털이 보송보송하게 남아 있는 1만8000년 전 강아지(또는 늑대새끼)가 발견됐는데, 유전학자들은 이 미라가 개인지 늑대인지 밝히는 데 실패했다. 유전적 차이가 거의 없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처음엔 늑대가 사람에게 다가온 걸까, 아니면 사람이 늑대를 조련해 개로 키운 걸까. 러시아 유전학자 드미트리 벨랴예프는 현재 개과 포유류로 분류되는 사나운 은여우를 길들이는 실험을 60년 전에 시작했다. 그리고 놀라울 정도로 짧은 시간인, 20년 만에 완전히 개와 비슷하게 행동하는 여우를 만들 수 있었다. 그 짧은 시간에 은여우의 유전자가 변한 것은 아니다. 유전자가 바뀐 게 아니라면, 개가 되는 특성이 여우나 늑대 안에 이미 내재돼 있다는 뜻이다.
벨랴예프의 연구는 말이나 소처럼 인간이 개를 길들였다기보다는 늑대가 스스로 인간의 친구가 됐을 가능성이 더 높다는 걸 보여주는 사례로 흔히 인용된다. 만일 사람이 늑대를 길들이는 것이라면 수천 년의 시간이 걸렸을 것이다. 하지만 늑대 유전자에는 다양한 요소가 내재돼 있고 그것이 인간을 만나면서 발현된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비유하자면 마치 옷장에 여름옷과 겨울옷을 다 구비하고 있다가 날씨가 추워지면 겨울옷을 꺼내 입는 것과 같은 원리다. 이제까지 인간은 막연하게 자기들이 개를 만들었다고 생각했다. 실상은 그 반대였다. 늑대가 살아남기 위해 인간에게 본격적으로 친숙함을 보인 것이다.
인간 세계에 들어온 개는 인간의 생로병사를 지켜봤다. 죽어서도 함께였다. 개 무덤이 그 증거다. 경남 사천시 늑도의 2000년 전 유적에서는 인간과 개가 함께 묻힌 공동묘지가 발굴됐다. 공동묘지 한쪽에는 개만 따로 묻은 무덤도 8기나 있었다. 사람들과 함께 묻힌 개들의 경우 대부분 다 자란 수컷들이다. 따로 묻힌 개 무덤의 경우 이 공동묘지를 지키거나 희생된 개들을 위한 것으로 보인다.
제사를 위해 희생된 개도 있다. 강원 강릉시 강문동에서는 2000년 전 사람들이 제사를 지내던 저습지가 발굴됐다. 특이하게도 가마니 같은 것에 싸여 버려진 개의 흔적이 발견됐다. 중세 서양에서도 사람이 지은 죄를 돼지에게 덮어씌우고 그 돼지를 물에 던지는 풍습이 있었다. 말 그대로 ‘희생양’처럼 개가 사람을 대신해 희생하는 풍습이 당시 동해안 지역에 있었던 것 같다. 수많은 민족과 그들의 문화에서 개는 인간의 삶과 함께해 왔다.
개와 늑대의 시간
개와 늑대는 결국 종이 한 장 차이였다. 적대적이던 인간과 동침을 선택한 순간 개와 늑대의 운명이 극과 극으로 바뀌었다. 늑대와 여우를 비롯한 수많은 동물이 빙하기에 이미 사라졌거나 현재 멸종 위기에 있다. 유일하게 개만이 세상의 중심에서 기하급수로 증가하며 어떤 동물보다 성공적으로 적응했다. 빙하로 둘러싸인 북극해에서 뜨거운 적도까지, 그리고 시골에서 대도시까지 다양한 지역과 기후 환경에 길들여진 개들이 살고 있다. 길들여진 것은 결국 개가 아니라 사람이었을지 모른다. 인간이 갈수록 고립되면서 개는 가족의 반열에 올라섰고, 사람과 같은 급으로 대접받게 됐다. 개가 우리에게 주는 깨우침은 결코 작지 않다. 개가 인간과 함께 번성하게 된 이유는 타고난 유전자나 인간의 순화 노력 덕분이 아니다. 개가 가지고 있는 공감과 감수성을 극대화해 자신의 진화를 선도한 것이 더 큰 이유다. 지금도 외국인이나 지역 간, 피부색과 언어로 서로를 차별하고 갈등하며 배척하려는 인간의 모습은 사라지지 않고 더 심해지고 있다. 잠시 반목을 멈추고 수만 년간 우리와 함께한 개에게서 삶의 지혜를 되새겨보고 배울 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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