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용고사로 교사 헌신성 측정 못해[기고/조주행]

  • 동아일보
  • 입력 2021년 9월 6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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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주행 전 중화고 교장
조주행 전 중화고 교장
교육부와 여당 의원들이 사립학교 교사를 공립학교와 동일한 방식으로 선발하도록 사학법을 개정한다고 하고, 경기도교육청은 교직원 채용을 위탁하지 않는 사학에 인건비 지원을 끊겠다고 한다. 사학 측에서는 궁여지책으로 지구별 공동 선발을 대안으로 내놓았다. 무상교육 의무가 있는 국가가 학교평준화정책으로 사학에 배정된 의무교육 대상 학생 몫으로 지불하는 사학 인건비를 지시에 따르지 않는다고 자의로 중단하는 것이 옳은지 알 수 없다.

사학이 인건비 부담으로 학생 교육을 충실하게 하지 못한다면 그 책임은 당연히 국가가 져야 한다. 더구나 세계 각국이 코로나19로 인한 학습격차 확대와 학생들의 성적 하락을 해결하기 위해 백방으로 애쓰는 이때, 우리 교육당국은 문제 해결은 뒷전으로 미루고 비교적 잘하고 있는 사학을 힘으로 누르려고 하니 한심한 일이다.

일부 사학에서 있었던 불미한 사례를 들어 전체 사학 신규 교사 채용권을 빼앗으려는 처사는 사학의 이념과 특성을 모르는 무지에서 출발한 것이다. 문제가 발견되면 개선하여 바로잡는 것이 현대 법치국가 민주행정일 것이다. 물의를 일으킨 사학을 처벌하여 바로잡아야지 신규 교사 선발제도 자체를 폐지해 정체성 위기에 빠뜨릴 일은 아니다.

당국이 사학교사를 대신 선발하려면 공립학교 교사 채용 방법인 임용 순위고사가 사학 교사 채용 방법보다 합목적적 효율성을 갖춘 우수한 방법이라는 사실을 먼저 입증하는 것이 순서일 것이다. 하지만 상급학교 진학 실적이나 각종 평가 결과에서 사학 학생들의 성적이 높고, 학생과 학부모가 공립보다 사립을 더 선호한다는 사실은 곧 사립의 교사 선발 방법이 더 우수함을 보여준다고 할 수 있다.

학생과 학부모가 바라는 교사상은 공립교사 선발 방법인 임용고사에 고득점으로 합격한 똑똑한 교사가 전부는 아니다. 임용고사로 우수 교사는 가려낼 수 있을지 모르나 신뢰할 수 있는 헌신적인 교사까지 가려낼 수는 없다. 공립교육은 보편성과 일반성이 중시되지만 사립교육은 건학이념 실현이라는 또 하나의 중요한 교육 목적이 있다. 건학이념에 따라 헌신하려는 열정이 있어야 그 목적을 이룰 수 있다.

사학은 평생직장이라는 면에서 협력적 인간관계가 특히 중요하다. 공립교사들의 5년 주기순환근무제와는 다르다. 한번 입직하면 퇴직 때까지 같은 학교에서 평생직장으로 동료 교사들과 장기간 함께 근무하며 고락을 함께해야 하니 사학 교사들 간에는 인화와 협동이 중요하다. 하지만 임용고사로는 교사의 인성이나 직업적성, 업무헌신성과 열정까지 측정할 수 없다는 점이 우려된다. 당국은 그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신규 선발 교사들을 대상으로 일정 기간 인턴제를 운영하려고 하고 있지만 그것도 쉽지 않은 일이다. 사학의 건학이념 구현과 학생의 다양한 선택권 확대를 추구하는 신교육과정 정신과도 배치되는 사립교사 위탁채용 강제라는 관권 우위의 비민주적 폭거를 당장 중지해야 한다.

#사학법 개정#임용고사#교사 헌신성 측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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