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무유기’급 무기력 야당, 끝까지 자리라도 지켰어야[광화문에서/김지현]

  • 동아일보
  • 입력 2021년 9월 7일 03시 00분


김지현 정치부 차장
김지현 정치부 차장
잠시 멈춘 더불어민주당의 언론중재법 개정안 입법 폭주 과정을 돌이켜보면 이게 ‘거여(巨與)’의 위력인가 싶다. 지난해 총선에서 압승한 뒤 임대차 3법, 경제 3법, 공수처법 개정안 등 나라 근간을 흔드는 법들을 독단적으로 처리했던 민주당은 언론중재법도 불도저처럼 밀어붙였다. 반면 야당은 이번에도 무기력했고 무능력했다. 힘이 없으면 전략이라도 세우든가, 전략이 없으면 노력이라도 해야 하는데 눈 뜨고 당한 뒤 뒷북치기에 바빴다.

시작부터 그랬다. 7월 6일 민주당은 국회 문화체육관광위원회 법안심사소위를 열어 징벌적 손해배상제 등을 담은 ‘민주당표’ 언론중재법 개정안을 상정했다. 앞으로 벌어질 일이 눈앞에 뻔한데도 국민의힘은 “기습 상정”이라며 회의에 불참했다. 그날 국회 속기록에 따르면 민주당 의원들은 “야당은 불참했지만 우리가 심도 있는 논의를 해보자”(김승원 의원) “야당이 일방적으로 참석하지 않는다고 법안 심사를 진행하지 않으면 안 된다”(박정 의원)며 ‘나 홀로 심사’를 강행했다. 결국 징벌적 손해배상제 규모는 기존 최대 3배에서 5배로 도리어 강화됐고, 7월 27일 법안심사소위에서 민주당 뜻대로 의결됐다. 국민의힘은 “유령 의결”이라며 반발했지만 이미 의사봉은 두들겨졌다.

국민의힘은 8월 18일 안건조정위에도 불참했다. 민주당을 저지하기 위해 요청한 안건조정위에 야당 몫으로 열린민주당 김의겸 의원이 들어온 데 항의하다 퇴장한 것. 민주당은 아랑곳 않고 자기들끼리 ‘밀실 처리’했다. 다음 날 국민의힘 이준석 대표와 김기현 원내대표까지 몰려가 항의했지만 이미 버스는 떠난 뒤였다. 야당의 ‘습관성 퇴장’은 국회 상임위 단계의 최종 관문인 법제사법위원회에서 정점을 찍었다. 24일 저녁 시작한 회의에선 여당의 강행 처리가 충분히 예상된 상황. 하지만 25일 오전 1시가 조금 넘어가자 국민의힘은 민주당의 일방적 차수 변경에 화를 내며 또 나가 버렸다. 이쯤 되면 오전 4시까지 법을 다 처리한 뒤 “1시간 자고 나왔다”며 아침부터 라디오에서 또 자신들의 입장만 주장하는 민주당 의원들이 독하다 못해 성실해 보일 지경이다.

심지어 국민의힘은 25일 오전 본회의 예정 시간이 임박할 때까지 필리버스터 카드도 꺼내지 않았다. 배경을 들어보니 당장 그날부터 필리버스터를 시작하면 8월 임시국회가 끝나는 31일까지 꼬박 일주일을 이어가야 하는데, 그럼 9월 1일부터 시작하는 정기국회 때 힘이 빠질 수 있다는 점을 우려했다고 했다. 그 나름 ‘장기전’을 위한 전략이라 했다. 국민의힘이 몸을 사리는 사이 여야 협상은 공회전을 반복했고 결국 민주당에 한 달의 명분 쌓기용 시간만 벌어줬다. 이를 지켜보던 여당 관계자는 “우리였으면 진즉에 기저귀라도 차고 로텐더홀로 달려갔다”며 혀를 찼다.

결과를 바꾸기 어렵다고 무조건 자리를 박차고 나가는 것만이 ‘야당 정신’은 아닐 것이다. 안 그래도 무기력한 야당이 보이콧까지 해버린 게 도리어 여당에 ‘이대로 밀어붙여도 되겠다’는 안도감을 준 건 아닌지 우려스럽다. 끝까지 자리라도 지켜 분명한 반대 목소리를 역사의 한 기록으로 남겼어야 했다.

#직무유기#무기력 야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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