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도 첫 책 때는 그랬지.” 올라오는 글마다 하트 세례를 퍼붓고 다니는 내게 출간 경험이 많은 선배가 말했다. 해시태그를 검색하던 손이 머쓱해졌다. 최근 첫 책을 냈다. 매월 발행되는 책의 수만큼 매월 첫 책을 내는 이도 많을 텐데, 막상 나의 일이 되니 별스럽게 들떴다. 아침에 눈을 뜨면 서점 순위부터 확인했다. 수시로 책 제목을 검색하며 새로 올라온 글을 확인했다. 그렇게 휴대전화를 부여잡고 있다 보면 순식간에 하루가 지나갔다.
뒤이어 선배가 말했다. “책 한 권 낸다고 인생 안 바뀌더라.” 순간 아차 싶었다. 당장 내가 해결해야 할 오늘 몫의 현실(이직)을 자각했다. 리뷰를 확인하던 창을 닫고 경력직 채용 공고를 띄웠다. 나열된 ‘직무 소개’에 가슴이 뛰지 않았지만 별다른 선택지를 떠올릴 수 없었다. ‘자격요건’으로 한 번, ‘우대사항’으로 한 번 필터링을 거쳐 허락된 것들이란 그러했다. 사회생활을 시작한 이래 맡아온 업무들, 내려온 선택들이 엮어낸 궤적을 벗어날 수 없는 것이었다.
혹자는 이참에 ‘전업작가’로 전향하라 바람을 넣었지만 셈이 빠른 회사원은 알고 있었다. 금전적 관점에서라면, 선배 말마따나 고작 신인 작가의 고작 책 한 권은 인생은커녕 오늘의 출근조차 바꿀 수 없었다.
그러나 고작 그 책 한 권이 매개가 되어 오고 가는 마음이란 ‘고작’이 아니었다. 생활에 치여 멀어졌던 이들조차 수줍게 책 사진을 보내오며 축하를 건넸다. 얼굴도 이름도 모르는 SNS 너머 생면부지 타인들은 시간과 마음을 들여 다정한 응원의 말들을 전해왔다. 위로가 되었다는 말은 나를 위로했고, 응원하겠다는 말은 나 또한 그들의 행복을 간절히 기원하게 했다. 황홀하리만치 따스한 말들이 몸 곳곳으로 스며들어와, 용기로, 나아가 스스로에 대한 신뢰로 차츰 차올랐다.
그러던 어느 월요일 새벽 문득 잠에서 깨어 몇 시간 뒤면 다가올 나의 한 주를 고요하게 관망했다. 늘 하고 싶은 게 많았기에 고민이 많았고, 후회가 두려워 선택을 주저했다. 손에 쥔 것들을 놓지 않은 채 얻을 수 있는 것들이란 극히 제한적이었으므로, 그렇게 내놓은 답안들은 대개 안전하고 무난한 것들이었다. ‘내가 무슨.’ ‘이미 늦었어.’ 애매한 나이 뒤에 숨어 도전도 하기 전에 포기했던 목표를 그 새벽 다시 떠올렸다. 궤적을 벗어나 보기로 했다. 사직서를 제출했다.
마음을 다한 생의 순간순간은 인생을 바꾼다. 작게는 오늘 내 기분부터 내일 내 역할까지. 하나하나가 작은 날갯짓을 이루어 다가올 바람을 빚어 나간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다정한 타인의 따스한 침범이란, 이토록 힘이 세다. 그런 관점에서라면, 선배가 틀렸다. 고작 책 한 권 내는 것으로도, 아니 고작 그 무엇으로라도 인생은 바뀌기도 한다. 그리고 그 변화의 시발점이 되는 날갯짓이란 상상 이상으로 사소한 것일 수도 있는 것이다. 가령 ‘당신을 응원한다’는 말 한마디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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