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종건 외교부 1차관이 7일 국회 외교통일위원회에서 ‘북한의 영변 핵시설 재가동이 사실이라면 4·27 판문점선언이나 9·19 평양공동선언 취지에 위배된다고 보느냐’는 야당 의원 질문에 “그건 아니라고 본다”고 답변했다. 그러면서 “4·27이나 9·19선언 합의에 북한이 가시적으로 취한 조치들은 여전히 진행되고 있다”며 핵·미사일 시험장 폐기를 언급했다. 청와대 관계자도 “최 차관 답변과 청와대(국가안보실)도 맥을 같이할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최 차관의 답변은 영변 핵시설 재가동 징후를 포착했다는 국제원자력기구(IAEA) 보고서 내용이 보도된 이래 정부가 보여준 납득하기 어려운 태도의 연장선일 것이다. 정부는 영변 재가동 움직임에 대북 경고나 항의는커녕 어떤 우려도 유감도 표명하지 않았다. 명백한 비핵화 역주행에도 애써 그 의미를 축소하며 입을 다물었다. 그러더니 이젠 사실상 북한을 대신해 변명하고 두둔까지 한 것이다.
4·27과 9·19선언 합의문은 각각 ‘남북은 완전한 비핵화를 통해 핵 없는 한반도를 실현한다는 공동 목표를 확인했다’ ‘북측은 미국이 상응조치를 취하면 영변 핵시설의 영구적 폐기 같은 조치를 취할 용의를 표명했다’고 돼 있다. 문구 그대로만 보면 위반이 아니라고 할지 모른다. 하지만 두 합의문이 나올 수 있었던 대전제는 김정은의 비핵화 의지였다. 영변 재가동은 그런 합의정신에 대한 정면 위반인데도 정부 반응은 침묵과 궤변뿐이다.
오늘 정권수립 기념일을 맞은 북한은 대규모 열병식 개최도 예고하고 있다. 대북제재와 코로나19, 자연재해의 3중고 속에서 벌이는 병정놀이에선 또 어떤 대외 위협용 무기를 선보일지 모른다. 그런데도 이 정부는 열흘 뒤면 3년이 되는 9·19 평양선언의 추억에 빠져 북한 달래기에 급급하고 있다. 북한을 협상 테이블에 끌어내려는 것이라지만, 그럴수록 북한을 도발 충동에 빠지게 하는 자충수가 될 수 있음을 알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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