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에서/이서현]‘그린스마트 학교’ 발표에 학부모가 분노한 진짜 이유

  • 동아일보
  • 입력 2021년 9월 10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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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서현 정책사회부 차장
이서현 정책사회부 차장
“코로나19 이후 아이가 이제야 제대로 등교하기 시작했습니다. 학교에 정 붙이고 친구도 사귀었어요. 전학이 싫어서 이사까지 미루기로 결심했는데…. 그런데 강제 전학이라니요?”

서울 서대문구에 사는 학부모 A 씨는 최근 아이가 다니는 초등학교가 내년도 ‘그린스마트 미래학교’(그린스마트 학교) 사업에 선정됐다는 소식을 들었다. A 씨 주변 학부모도 동요하기 시작했다. 예산 18조5000억 원이 투입되는 그린스마트 학교 사업은 이름만 보면 학부모들이 반대할 이유가 전혀 없어 보인다. 40년 된 노후 학교를 리모델링해 저탄소 에너지 자급을 지향하고, 첨단시설을 갖춘 교실을 짓는다고 한다. 그런데 어째서 학부모들은 빗속에 시위까지 하며 반대하는 것일까.

학부모들의 이야기를 듣다 보면 공통적으로 ‘교육청의 불통’과 ‘아이들의 안전’이라는 대목에서 언성이 높아진다. 초등학교는 아이들이 첫발을 내딛는 ‘교육기관’이다. 더구나 코로나19로 학교가 문을 닫으며 적응에 어려움을 겪는 아이들이 늘었다. 부모들은 안정적인 환경에서 아이들이 학교생활에 집중할 수 있도록 그 어느 때보다 전력투구 중이다. 그런 상황에서 느닷없이 ‘낯선 학교로의 전학’을 통보받은 것이다. A 씨는 “언제 전학이 시행되는지, 전학을 가야 하는 학교가 걸어갈 수는 있는 곳인지 속 시원히 설명해주는 사람이 아무도 없다”고 말했다.

유치원생 딸을 둔 B 씨는 최근 부동산시장의 혼란에도 서울 동작구의 아파트를 무리해서 매수하는 결단을 내렸다. 이유는 단 하나, 초등학교다. ‘전세 난민’으로는 아이가 초등학교 6년을 안정적으로 마칠 수 없겠다는 우려가 가장 컸다. B 씨의 이사 계획은 뜻밖의 난관에 부딪쳤다. 아이가 다닐 학교가 그린스마트 학교에 선정돼 전교생이 전학을 앞두고 있다는 것이다. 전학을 가지 않는 경우 컨테이너 형태의 모듈러 교실에서 수업을 들어야 하는데 이 생소한 교실은 안전에 대한 학부모들의 불안을 더욱 부추겼다. 학부모들은 아이들이 다른 학교로 뿔뿔이 흩어져야 할 정도의 사안이라면 시간을 두고 정책을 상세히 설명한 뒤 협의하는 절차가 필수적이라고 주장한다.

서울시교육청은 “노후 교사 개축 사업은 본래 학부모 동의 사항이 아니었다”고 항변한다. 하지만 ‘불통’으로 시작한 정책이다 보니 온갖 추측이 이어진다. ‘혁신학교 수순’이라거나 ‘고교학점제용 교실’이라는 우려는 소통하지 않은 교육청이 자초한 셈이다. 8일 교육청은 자료를 내고 조목조목 의혹을 부인했지만 이미 잃어버린 신뢰를 회복하기에는 역부족이다.

지난달 말 진행된 정책토론회의 조희연 교육감 발언을 보면 학부모들과의 간극이 보다 분명히 드러난다. 조 교육감은 “혜택이라면 혜택이다…. 21세기 학생들을 낡은 공간에서 교육하면 안 되겠다는 생각으로 어렵게 쟁취한 사업”이라고 했다. ‘첨단’ ‘그린’ 같은 수식어에 집중하느라 정책이 길을 잃은 것은 아닌지, 아이들이 겪을 어려움은 어떻게 해결할지 고민해야 할 때다. 교육정책에 다른 목적이 있어서는 안 된다. 시작과 끝은 아이들이다.

#그린스마트 학교#학부모 분노#진짜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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