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조의 장자였던 문효세자가 일찍 세상을 뜨자 순조는 11세에 왕세자에 책봉돼 그해 왕위에 오른다. 영조의 계비였던 정순왕후가 수렴청정하는 사이 어린 그는 수두, 홍역, 천연두 등 전염병을 세 차례나 겪으며 생사를 오간다. 모두 바이러스성 질환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당시 순조의 면역기능에 큰 문제가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역병과의 전쟁은 순조 재위 1년, 12세에 시작됐다. “발진은 그저께 처음 시작됐는데 상체뿐 아니라 크고 작은 것이 다리, 발 부분에 많이 퍼져 있다.” 단순한 음식물 두드러기로 판단한 의관들은 금은화와 산사를 합친 약차를 처방했지만 이튿날 발진 부위가 불그스름해지며 열기가 있자 그제야 역병으로 진단하고 승마갈근탕을 투여했다. 특히 ‘사과차’라는 특별한 처방을 함께 복용하였는데 이때 ‘사과’는 수세미의 약명이다.
동의보감은 수세미를 ‘발진을 없애는 오묘한 약물’이라고 소개하는데 요즘은 알레르기비염 치료에도 사용한다. 촉촉하고 미끄러운 수세미는 콧물과 가려움증, 재채기, 코막힘 등에 효과가 있다. 수세미 차 덕분일까. 순조의 수두 증상은 차 복용 사흘 후부터 나아지면서 열흘 후에는 완전히 회복됐다.
순조는 이듬해 13세 때는 홍역으로 크게 고생한다. 비슷한 시기 왕비가 된 안동 김씨 김조순의 딸도 홍역을 치른다. 의관들은 같은 질병이지만 순조에겐 가미승갈탕을, 왕비에겐 가미강활산을 처방했다. 체질에 따라 치료법이 다른 한의학적 특성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이들의 홍역 증상은 처방 6일 후 말끔히 사라졌다.
16세에 이른 순조는 가장 무서운 역병인 천연두를 앓는다. 바짝 긴장한 왕실은 순조의 장인 김조순으로 하여금 치료를 진두지휘하게 했다. 오랜 세월 천연두에 대응해온 어의들이 경험을 모아 왕실만의 비방(秘方)인 ‘감로회천음’ 처방을 내렸는데 그 후 발진이 사라지며 딱지가 앉고 열이 내렸다고 한다.
순조가 역병을 세 번이나 앓자 의관들은 그의 면역기능 회복을 위해 특별 처방을 내린다. ‘귀용탕’이 바로 그것. 귀용탕은 당귀와 녹용을 합한 처방이지만 녹용의 효험이 훨씬 크다. 청나라 말기 의서인 ‘본경소증’은 녹용의 효능을 이렇게 설명한다. “녹용은 피가 쌓여 솟아오른 것으로 피를 빨아 당기는 힘이 가장 왕성하다. 녹용은 그 강력한 힘으로 위축된 것을 왕성하고 힘차게 변화시킨다.”
뿔 속에 피가 흐르는 동물은 사슴밖에 없다. 머리뼈를 뚫은 고압의 피가 뿔을 채운 것이기에 한의학은 “내부의 뜨거운 양기가 외부로 폭발한 것”이라고 규정한다. 면역력이란 결국 병원체와 내 몸의 대결이다. 몸이 강하면 병원체가 인체를 공격할 수 없다. 한의학에서 면역력의 핵심은 몸을 따뜻하게 하는 것이다. 녹용은 그중에서도 가장 강력한 약재다.
하지만 면역력 향상은 음식과 약만으로는 불가능하다. 마음의 고요와 평화는 면역력의 또 다른 추진체다. 이는 현대의학도 다르지 않다. 그만큼 정신적 안정이 중요하다는 얘기다. 순조가 어린 나이에 전염병에 시달리고 45세에 병사했던 이유도 여기에 있다. 왕이 그만큼 ‘극한직업’인 까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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