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방대 적자생존… 기업처럼 마케팅 도입해 교육시장 개척을”[인사이드&인사이트/이만기]

  • 동아일보
  • 입력 2021년 9월 13일 03시 00분


대학 브랜드시대 생존법

올해 5월 부산시청 앞 광장에서 전국교수노동조합, 전국대학노동조합 등이 주최한 기자회견이 열리고 있다. 이들은 지방대학 붕괴 위기에 대한 정부의 대책 마련을 촉구했다. 동아일보 DB
올해 5월 부산시청 앞 광장에서 전국교수노동조합, 전국대학노동조합 등이 주최한 기자회견이 열리고 있다. 이들은 지방대학 붕괴 위기에 대한 정부의 대책 마련을 촉구했다. 동아일보 DB
이만기 유웨이 교육평가연구소장 겸 부사장
이만기 유웨이 교육평가연구소장 겸 부사장
《얼마 전 만난 서울 A대학의 한 직원은 “새 총장 취임 후 발전기금과 연구용역 수주가 크게 늘었다”고 말했다. A대 총장은 취임 전 보직교수 시절에도 학교 안팎에서 남다른 평가를 받았다. 기업에 비교하면 그는 탁월한 최고경영자(CEO)로 볼 수 있다. 누군가는 대학을 어떻게 기업에 비교하느냐고 반문할 수 있다. 하지만 이제는 그럴 수밖에 없는 시대가 됐다. 한편으로 대학이 교육서비스 마케팅으로 현 위기를 돌파할 수 있다는 이야기다.》

○ 교육부 대학 기본역량 진단의 후폭풍


최근 교육부의 ‘대학 기본역량 진단’ 결과 발표로 교육계와 지역사회가 시끄러웠다. 52개 미선정 대학 중 40여 곳이 부당한 평가를 받았다며 반발하고 있다. 행정소송을 준비하거나 총장이 사의를 표명한 대학도 있다.

대학들이 이렇게까지 하는 이유는 하나다. 정부로부터 연간 수십억 원의 일반재정지원을 받지 못하면 등록금이 13년째 동결된 상태에서 대학 운영에 지장을 초래할 게 뻔해서다. 그렇지 않아도 학령인구가 급격히 감소해 대학은 어려운 상황이다. 더욱이 이번 기본역량 진단 발표가 2022학년도 수시모집을 코앞에 둔 시점에 나와 미선정 대학들은 학생모집에 차질이 빚어진다고 아우성이다.

올해 전체 대학의 신입생 충원율은 91.4%인데 지역대학과 전문대학에 미충원 인원이 집중됐다. 신입생 충원율이 50%가 안 되는 4년제 대학도 10개가 넘는다. 학생 미충원으로 재정적인 문제에 직면하는 대학이 늘고, 교육의 질이 낮아지거나 폐교 위기인 대학이 증가하며 지역경제도 위축된다는 우려가 현실이 되는 것이다.

앞서 교육부는 5월에 전국을 5개 권역으로 나눠 각각 30∼50%가량의 대학이 정원을 감축해야 한다고 발표했다. 이번에 기본역량 진단에서 선정된 대학은 정원 감축을 포함한 자율혁신계획을 교육부에 제출해야 한다. 이후 교육부가 권역별로 유지충원율을 결정해 이 기준에 못 미치는 대학에 정원 감축을 권고할 예정이다. 물론 감축하지 않아도 된다. 그럴 경우 교육부는 재정 지원을 중단할 방침이다. 일부 대학 사이에서는 “지역대학 살리겠다고 수도권 대학에까지 고통을 분담시키느냐”는 불만이 나온다.

○ 지역대학, 회생의 돌파구는 어디에…


이를 해결하기 위해 정부와 지방자치단체는 전방위로 노력하고 있지만 쉽지 않다. 7월 교육부는 ‘학령인구 감소 및 미래사회 변화에 대응한 대학의 체계적 관리 및 혁신 지원 전략’을 발표했다. 대학이 회생할 수 없는 경우 폐교 명령을 내리고 평생직업 교육 체제로 전환하면 이를 지원한다는 게 주요 내용이다. 권역별 유지충원율을 점검하고 미충족 대학에 대해 정원 감축을 권고한다는 내용도 있다. 정부는 지역대학을 위해 재정지원을 해주고, 기업은 산학협력을 통해 지역에서 배출되는 인재를 수용하는 등의 방안이다.

현실적으로 국가가 대학을 언제까지 보호할 수는 없다. 대학 스스로 강도 높은 자구책을 마련해야 한다. 학령인구 감소와 대학의 위기는 이미 예고된 일이다. 20여 년 전부터 학자들은 대학이 공급자 위주 서비스 전략에서 수요자 위주 마케팅 전략을 펼쳐나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걸 알고도 교육당국과 대학은 지금까지 대처하지 못했다. 실책이다.

지역대학이 살길은 20년 전 미국 대학의 사례에서 찾을 수 있다. 우리보다 먼저 비슷한 위기에 처했던 미국에선 기업의 전유물인 마케팅을 대학에 연계했다. ‘대학 마케팅’, ‘입시 마케팅’이라는 개념이 이때 생겨났다. 대학은 전략적으로 ‘교육서비스 마케팅’이라는 개념을 도입해 교육 시장을 개척하고 새로운 수요를 창출했다.

실제 입시 결과는 대학의 브랜드 평판, 지리적 위치, 장학금을 비롯한 비용 문제 등이 좌우한다. 이는 마케팅의 변수인 제품, 가격, 유통 경로, 입지, 서비스 등과 일치한다. 대학들은 이런 점에 주목해야 한다.

현재 우리 대학들도 소비자주의적 관점에서 신입생을 유치하려고 시도 중이다. 퇴직 교원을 입시홍보 담당으로 채용하고 유튜브 영상 제작에도 힘쓴다. 입학금과 등록금을 받지 않고, 스마트기기 구입 비용을 지원하는 대학도 있다. 지난해 신입생 모집을 위해 이벤트 하듯 수험생에게 현금이나 현물을 준 대학이 30개가 넘는다. 하지만 이렇다 할 효과를 거둔 곳은 거의 없는 것으로 파악된다.

○ ‘교육서비스 마케팅’으로 인식 전환 필요


한국생산성본부 사업영역 중에 교육마케팅과 관련된 ‘대학경영진단 컨설팅’이 있다. 여기에서는 대학 중·장기 발전전략 수립, 특성화 전략 수립, 대학 교육과정 개발·개편, 학과 구조조정 및 운영, 역량중심 교육과정 개발 등 여러 개의 컨설팅 결과를 제시한다. 웬만한 기업 경영컨설팅과 다르지 않다. 이제 대학이 학문의 전당만이 아니라는 얘기다.

이런 관점에서 입시마케팅의 범위를 보면 상품 측면에서 교육과정, 교수·학습법, 학사제도 등을 생각할 수 있다. 가격 측면에서는 입학금, 등록금, 장학제도 등이 있다. 입지 측면에서는 접근성, 교통수단, 주변 환경 등을 고려할 수 있다. 프로모션 측면에서 입시 홍보, 광고·PR 등은 기본이다. 등록금 면제는 여러 입시 마케팅 중 일부분이다. 그것만으로는 마케팅에 성공할 수 없다.

일부 대학은 자구책 마련을 위해 기업처럼 적극적으로 학교 컨설팅을 추진한다. 실제 대학에 가서 주요 보직교수를 대상으로 브리핑을 하고 질의응답을 진행하다 보면 무거운 분위기에서 예상하지 못한 진솔한 대화가 오간다. 눈길을 끄는 건 대학이 가장 관심이 있는 입시마케팅 데이터 중 하나가 바로 ‘중복 합격자의 대학 선택’이다. 우리 대학에 합격한 학생들이 어느 대학으로 빠져나가는지, 또 같은 경우로 어느 대학에서 우리 대학으로 오는지를 특히 궁금해한다. 우리 대학에 합격한 수험생들부터 놓치지 않겠다는 의지로 보인다.

지역대학이 위기에서 벗어나려면 철저하게 교육서비스 마케팅 개념을 적용해야 한다. 마케팅 관점에서 대학이 상품인 교육을 잘하는 건 기본이다. 그 외에 그 상품을 사러 오도록 만들어야 하는 대학 입장에서는 총장부터 모든 구성원까지 마케팅 지향적 사고를 해야 한다. 총장과 교직원, 교수들은 학생과 학부모라는 대중이 원하는 서비스를 제공하는 조직의 구성원이라는 생각을 늘 가져야 한다. 그래야 지역대학이 위기를 넘길 수 있다. 그러지 못하면 폐교까지 감내해야 한다. 대학 생태계에도 적자생존은 유효하다.

#지방대#적자생존#마케팅 도입#교육시장 개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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