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방부 감사관실이 8일 배포한 5쪽짜리 ‘청해부대 34진(문무대왕함)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 집단감염 감사 결과’ 보도자료를 보면 유독 ‘다소(多少)’라는 말이 눈에 걸린다.
해외 파병 부대인 청해부대를 지휘하는 합동참모본부의 늑장 보고가 “다소 아쉬운 측면이 있다”거나 출국 전 승조원에 대한 군 당국의 백신 접종 노력이 “다소 미흡했다”, 현지 기항지에서 백신 접종을 하는 방안을 적극 검토하지 않았던 점이 “다소 아쉽다”는 것이다.
당연히 많은 이들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7월 승조원 301명 중 90.4%인 272명이 감염됐고 국민적 공분으로 서욱 국방부 장관이 직접 대국민 사과까지 했다. 군 내부에서조차 실무자는 물론이고 지휘관에 대한 대규모 문책이 불가피할 것이라 봤다. 하지만 결과는 6개 기관과 부서에 ‘경고’를 내린 게 전부였다. ‘다소 미진한 점이 있으나 누구도 징계는 하지 않겠다’는 것이다.
그 대신에 감사관실은 7월 2일 함정 내 첫 감기 환자가 발생한 이후 8일 동안 합참에 보고하지 않았던 청해부대가 7월 5일 승조원 격리 등 방역조치를 시행한 것을 두고 “강력한 거리 두기” “특단의 대책”이라면서 “대응 조치는 적절히 이뤄진 것으로 보인다”고 판단했다. 이미 함정 내 18명의 감기 환자가 발생한 시점이자 첫 감기 환자가 나온 지 사흘 만에 이뤄진 뒤늦은 조치를 이렇게 평가한 것이다.
장병들이 하나둘 감염된 경위를 파악하고 규정이나 원칙, 상식에 비춰 지휘보고 라인에 놓인 이들의 결심과 보고 과정의 잘잘못만 따졌으면 될 일이다. 여러 부사(副詞)로 치장된 문장들을 보면서 “그럼 그렇지…”라며 실소(失笑)를 금치 못한 당국자들도 적지 않았다.
감사관실은 보도자료 말미에 엄격한 방역대책을 해당 기관들에 마련할 것을 요구했다고 적었다. 허나 향후 이 문구가 잘 지켜질 것이라 믿는 이들은 많지 않다. 안타깝게도 지금 군에 대한 신뢰가 그렇다.
이번 청해부대 감사 결과는 여전히 군에 고질적이고 관성적인 보신주의(保身主義)가 남아있음을 시사한다. 사태 초반 언론과 여론의 질타가 쏟아지면 자체적인 진상조사를 실시하겠다고 밝힌 뒤 관심이 멀어질 때쯤 조사 결과를 내놓으며 사건이 마무리되는 행태가 계속 반복되고 있는 것이다. 이런 조사 결과엔 대부분 ‘제 식구 감싸기’ ‘맹탕’ 수식어가 붙는다. “문재인 대통령까지 군을 질책한 이번 사태에 대한 조사 결과가 이 정도라면, 일반에 알려지지 않은 사건들은 어떻게 처리되겠느냐”는 의구심이 제기되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이런 가운데 6월 군을 뒤흔든 공군 이모 중사 성추행 사망 사건에 대한 최종 수사 결과가 이달 발표된다. 사건 이후 문 대통령 지시에 따라 병영 폐습을 바로잡겠다며 야심 차게 출범한 민관군 합동위원회의 활동도 이르면 이달 중 마무리된다. 많은 군 관계자들은 이번 수사 결과와 후속 조치가 군의 관성적인 보신주의를 테스트할 기회가 될 것이라고 입을 모은다.
이 중사 사건 초기 참모총장을 자르고 민관군 합동기구를 만든 군의 후속 조치가 2014년 윤모 일병 사건 당시와 ‘판박이’라는 비판을 의식해서일까. 이번 합동위는 초급 간부부터 군 수뇌부까지 여러 군 관계자들을 대상으로 간담회를 열고 현장의 의견을 적극 청취해 왔다고 한다.
하지만 병영 혁신 권고안을 만들어 가는 논의 과정에서 군의 소극적인 태도에 불만을 가진 위원 10여 명이 사퇴하면서 파열음도 잇따랐다. 박은정 합동위원장이 “몇몇 위원들의 사퇴 의사 표명이 합동위 전체의 불협화음으로 비친 부분은 사실과 다르다”며 논란을 진화했지만 병영문화 혁신의 방식과 속도를 두고 군과 민간의 온도차가 뚜렷한 것도 주지의 사실이다. 민관군 합동위의 최종 권고안이 발표되는 데 그치지 않고, 군이 이 권고안을 얼마나 잘 이행하는지 감시, 점검하는 방안도 함께 마련돼야 한다는 지적이 그래서 나온다.
최근 군은 병영 내 가혹행위 등이 적나라하게 묘사된 넷플릭스 드라마 ‘D.P.’에 대해 이례적으로 “지금 상황과는 다르다”는 입장을 냈다. 국회에서 서 장관은 “드라마에 나오는 내용은 극화된 부분이 분명히 있다. 병영문화는 개선 중에 있다”고도 했다. 드라마에 묘사된 상황이 현실인지 아닌지 문제를 떠나 이번 논란이 군에 대한 무너진 신뢰와 그간 관성적인 보신주의로 군이 변화하지 못했다는 통렬한 지적임을 군은 명심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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