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머니 사정이 넉넉지 않던 유학생 시절 용돈을 조금씩 모아 외식을 즐기던 장소가 있었다. ‘레옹 드 브뤼셀(Leon de Bruxelles)’이라는 체인 형태 홍합 전문점이다. 그곳에 가면 말쑥하게 차려입은 가르송(웨이터)이 무거운 주물 냄비를 테이블 위에 내려놓는데 뚜껑을 열면 알라딘의 요술 램프처럼 하얀 김이 치솟는다. 이어 홍합의 붉은 빛깔을 보는 순간 입안 가득 군침이 돈다. 2만 원의 행복을 즐겼던 추억이 생생하다.
홍합을 먹는데도 파리 사람들만의 방법이 있다는 것을 안 곳도 여기다. 먼저 가장 큼지막한 홍합 하나를 집어 들고 속살을 떼 내어 입에 넣은 다음 빈 껍데기를 낚싯대 삼아 나머지 홍합이 바닥을 드러낼 때까지 사냥하듯 먹는 방식이다.
우리나라 포장마차에서 먹는 홍합은 시원한 국물을 얻기 위한 엑스트라 역할이지만 프랑스에서는 당당히 주인공이다. 국물은 바닥에 깔릴 정도로 자박해서 시원한 홍합 국물을 들이켤 요량으로 찾은 사람들이라면 실망하기 일쑤다. 여행 가이드북에 소개되면서 한국인 여행자 사이에서도 꽤 유명해졌는데, 나는 이곳을 한국 아저씨들과는 함께 가지 않는다. 홍합 하면 ‘공짜 음식’ 운운하니 애써 맛집을 찾는 기분이 좋을 리가 없다.
이곳 홍합이 비싼 이유를 설명하자면 대략 이렇다. 양젖으로 만든 푸른곰팡이치즈 로크 포르(Roquefort)와 한국에서도 고급 버터로 유명한 이즈니생메르 크림, 여기에 화이트와인 같은 비싼 식재료와 함께 오랫동안 끓였다. 그 맛은 미안하지만 당신의 상상을 넘어선다.
세계적인 대문호 빅토르 위고가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광장’이라 말한 그랑 플라스 광장 옆, 옛 시장통 골목 안에 위치한 ‘셰 레옹(Chez Leon)’이라는 노포는 홍합 레스토랑의 원조로 불린다. 1893년에 문을 연 이곳은 6대째 대를 이어 홍합의 위상을 전 세계에 알린 곳으로 언제나 문전성시를 이룬다. 통통하게 살이 오른 홍합을 화이트와인, 샐러리, 허브와 함께 끓여낸 ‘물 마리니에르(Moule Marini‘ere)’가 특별한데 벨기에를 대표하는 음식 중 하나인 바삭한 감자튀김과 함께 제공된다.
유럽에서 홍합은 날것으로도 먹는다. ‘바다의 과일’로 직역되는 ‘Fruits de mer’라는 음식을 주문하면 삶은 새우며 게, 가재 등을 차갑게 해서 제공하는 요리가 나온다. 이때 굴과 홍합 그리고 조개 등이 날것으로 나온다. 회는 먹지 않으면서 조개와 홍합을 날것으로 먹는다는 사실에 처음엔 문화충격을 받았는데, 심지어 이 음식은 여름에 더 인기가 있다. 우리 선입견과 달리 비릿함이 느껴지지 않는 쫄깃한 해산물의 신선한 맛이 입안 가득 전해진다.
유럽에서 홍합은 레시피가 120여 종에 이를 정도로 다양한 모습이다. 공짜 생각 대신 평소 맛보지 못한 음식에 과감히 도전해보는 용기가 여행을 더욱 풍요롭게 만들어 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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