갤러리 공간을 새로 얻으면서 근 두 달간 인테리어를 할 일이 있었다. 결혼할 때를 제외하면 내 인생에 이렇게 많은 쇼핑을(그렇다고 엄청난 금액도 아니지만) 한 때가 또 있었나 싶다. 예전부터 꼭 갖고 싶었던 앰프와 스피커를 샀고, 여러 명이 빙 둘러앉을 수 있는, 가로로 긴 테이블도 장만했다. 이탈리아 조명 브랜드 아르테미데의 빈티지 제품도 큰마음 먹고 들여놓았다. 한번 돈을 쓰기 시작하니 갖고 싶고 들여놓고 싶은 것이 계속 늘어났다. 홈 갤러리를 콘셉트로 하는 만큼 큼지막한 소파도 하나 있었으면 좋겠고, 맞은편에는 데이 베드가 있으면 맞춤이지 싶었다. 와인 냉장고에도 계속해서 눈길이 갔다.
결국 원하는 대로 모든 것을 다 집어넣지는 않았다. 돈이 부족해서이기도 했고, 끝없이 “별로야” “그건 아니야”를 반복하는 아내의 반대에 지쳐서이기도 했다. 아내는 뭐만 하겠다고 하면 “아니야” 소리를 반복했다. 인공지능(AI) 같았다. 한번은 이렇게 외치기도 했다. “여백을 무시하지 말라고!” 처음에는 이 문제로 엄청 싸웠는데 그 나름대로 타당한 구석도 있어 또 금세 수긍하는 마음이 되었다. 가장 크게 느낀 것은 공간에서는 ‘1+1=2’의 수식이 통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그간 사 놓은 온갖 공예품과 디자인 소품을 들고 가 욕심껏 디스플레이를 했는데 한 점만 놓았을 때 반짝 하고 빛났던 것이 두 점이 되고 세 점이 되니 진흙에 묻힌 사금파리처럼 생기를 잃었다. 각자의 개성으로 빛날 줄 알았는데 어떤 작품도 빛나지 않았다. 가구 역시 마찬가지였다. 의자가 두 개만 있을 때는 적당한 여백도 느껴지고 조형미도 눈에 들어왔는데 한 점씩 추가하다 보니 개성이 도드라지지 않았다. 아티스트 지니 서가 한 말이 있다. “공간과 사물이 만나는 세계는 1+1=2의 세계가 아니에요. 100이 될 때도 있지만 마이너스가 될 때도 있어요. 마치 어떤 사람을 만나느냐에 따라 위태로운 촛불이 됐다가 맹렬하게 불타오르는 화산이 되기도 하는 연인 관계하고도 비슷해요.”
또 하나 느낀 것은 내가 아름답다고 느끼는 것이 명확해야 아름다운 공간이 만들어진다는 것이다. 이것도 좋고, 저것도 좋아서는 색채가 깃들지 않는다. 아름답고 생기 있는 공간을 만드는 것은 비싸고 유명한 가구와 가전이 아니라 각자가 갖고 있는 ‘미의 기준’이라는 깨달음! 그렇게 사무실을 오픈하고 많은 손님들이 다녀갔다. 다양한 말(言)이 남았는데 가장 인상적인 리뷰는 이것이었다. “공간 너무 좋았습니다. 특히 ‘꾸안꾸’(꾸민 듯 안 꾸민 듯).” 역시 공간은 채움의 문제가 아니라 비움의 문제인 것 같다.(알고 있었는데 왜 실전에서는 안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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