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대통령은 22일 유엔총회 연설에서 “(6·25전쟁) 종전선언이야말로 한반도에서 화해와 협력의 새 질서를 만드는 중요한 출발점”이라며 ‘남북미 3자 또는 남북미중 4자 종전선언’을 거듭 제안했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한반도 비핵화를 위한 진지한 외교’를 강조하며 “우리는 확실한 약속 아래 가능한 계획을 향한 구체적 진전을 추구한다”고 말했다. 두 정상은 북한의 미사일 도발에 대해선 언급하지 않았다.
한미 정상의 유엔 연설은 북한의 잇단 도발적 행보와는 극명하게 대비되는 대북 유화 메시지가 아닐 수 없다. 북한은 한미의 거듭된 대화 손짓에도 5MW 원자로를 재가동하고 우라늄 농축공장을 확장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최근엔 장거리순항미사일과 단거리탄도미사일 발사로 무력시위를 벌였다. 라파엘 그로시 국제원자력기구(IAEA) 사무총장은 21일 “북한 핵 프로그램이 전력 질주하고 있다”고 평가했다.
사정이 이러니 한미 정상의 발언은 정작 북한을 향한 것이 아니라 한미 서로에게 던지는 메시지로 읽히는 게 작금의 현실이다. 미국은 그간 비핵화 전 종전선언에 부정적이었고, 북한은 종전선언을 대미 압박용으로 활용했다. 문 대통령 제안은 미국을 향해 먼저 양보하라는 권고로 해석될 수 있다. 미국은 새 대북정책에 한국 의견을 대폭 수용했지만 진전은 전혀 없었다. 바이든 대통령이 말한 ‘구체적 진전’도 한국 뜻대로 했는데 실질적 성과가 없지 않느냐는 답답함의 토로일 수 있다.
북한이 도발을 벼르는 상황에서 종전선언 제안은 뜬금없고 공허하게만 들린다. 올 5월 취임 4년을 맞아 “남은 임기에 쫓기거나 조급해하지 않겠다”고 했던 문 대통령이다. 유엔 연설에선 “상생과 협력의 한반도를 위해 남은 임기 끝까지 최선을 다할 것”이라고 했다. 이번 종전선언 제안이 임기 말 성과를 노린 집착이나 조급증의 발로는 아닌지 자문해 봐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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