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주식 거래액이 3경(京) 원을 넘었다. 경이라는 단위 자체가 생소하다. 숫자로 표시하면 1 뒤에 ‘0’을 16개나 붙여야 한다. 거래액은 취합 방식이나 거래 종류 등에 따라 달라지는데 3경을 넘기는 사실상 처음이다. ‘동학개미’ 등장과 공모주 청약열풍, ‘빚투’ 등이 겹치면서 거래액이 전년보다 70% 늘었다. 주식거래 3경 돌파에는 한국 경제의 빛과 그림자가 함께 녹아 있다.
▷주식 거래액이 급증한 데는 일차적으로 동학개미가 큰 역할을 했다. 지난해 코로나 사태 직후 외국인들이 한국 주식을 대거 처분했다. 주가 급락 조짐을 보이자 개인들이 매수에 나섰다. 외국인의 매도 공격을 방어했다는 점에서, 외세에 맞선 동학농민운동에 빗대 동학개미라고 불렀다. 올해도 비슷하다. 지난달 미국의 긴축 조짐에 따라 외국인이 한국 주식을 내던지자 동학개미들이 쓸어 담고 있다. 외국인이 높은 값에 주식을 되산다면 올해도 동학개미의 승리일 테지만, 결과는 알 수 없다.
▷공모주 청약 열기도 뜨겁다. 우량 기업이라고 소문이 나면 주식을 배정받겠다고 내놓는 청약 증거금이 수십조 원을 쉽게 넘는다. 1억 원의 증거금을 냈는데 단 2주만 배정받은 사례도 있다. 적은 이익이라도 얻으려고 청약에 나서지만 결과가 좋지만은 않다. 지난해 하반기 상장한 기업 가운데 약 35%는 주가가 공모가를 밑돌고 있다. ‘따상’(거래 첫날 공모가의 2배로 시작해 다시 상한가)을 기대했는데 울상이 될 수 있다.
▷증권사들은 신났다. 거래가 늘면서 지난해 수수료 수입이 급증했다. 전년 대비 2배 이상 늘어 5조 원을 넘겼다. 증권사가 돈 잔치를 벌일 때 투자자들은 걱정이 늘었다. 미국이 본격적인 긴축에 나서면 주가가 떨어질 수 있고, 빚이라도 냈다면 이자 부담까지 커질 상황이다. 외국인의 매도 공세를 버텨내기도 힘겹다. 사고팔기를 반복하는 ‘단타’ 투자는 증권사만 배불릴 수 있다는 점을 잊지 말아야 한다.
▷한국 주식투자 인구는 900만 명에 육박한다. 주식 계좌 수는 5000만 개를 돌파했다. 최근 2년 새 ‘주린이’(주식+어린이)가 200만 명 이상 늘었다. 건전한 투자 문화가 뿌리를 내려야 할 때다. 증시는 상상보다 넓은 시장이다. 커피 한잔 값이면 수천억 원짜리 선박이나 유전(油田)도 ‘일부’ 살 수 있다. 상장된 선박펀드나 유전펀드를 사는 방식이다. 증시에서 못 사는 재화는 거의 없다. 빚투 열풍도 있지만 증시에서 경제를 배우는 투자자가 적지 않다. 테마주를 좇으며 루머에 휩쓸리기보다 폭 넓게 공부하고 투자하는 문화가 정착되길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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