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용 외교부 장관이 22일 미국 뉴욕에서 열린 외교협회(CFR) 초청 대담에 참석해 공세적으로 변해 가는 중국 외교를 두고 “중국으로선 당연한 일”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중국은 경제적으로 강해지고 있고 20년 전의 중국이 아니다. 그들 얘기에 귀 기울여야 한다”고 했다. 정 장관은 진행자가 미국 한국 일본 호주를 반(反)중국 블록으로 구분하자 “그게 중국인들이 말하는 냉전시대 사고”라고 반박하기도 했다.
정 장관의 발언은 중국의 외교 행태를 두둔하면서 중국식 반박 논리까지 그대로 옮긴 것으로 한국 외교수장으로서 적절한 언사인지 의문을 갖게 한다. 중국의 거칠고 오만한 외교는 ‘늑대전사(전랑·戰狼) 외교’라 불릴 만큼 악명이 높다. 중국 이익에 어긋나면 거친 말폭탄이나 보복 조치도 서슴지 않는다. 미국의 견제 노선에도 입버릇처럼 ‘냉전적 사고’라고 맞받아친다. 시진핑 주석도 유엔총회 연설에서 “냉전식 제로섬 게임을 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이런 중국을 감싸는 것은 결국 중국과 전략 경쟁을 벌이는 미국을 비판하는 것이나 다름없다. 북핵 문제의 해결을 위해선 중국의 협력이 중요하고, 시 주석의 방한이 이뤄지면 사드 사태 이후 한중관계의 전면 회복이 기대되는 것도 사실이다. 미중 사이에서 현명한 외교가 필요하지만, 그렇다고 동맹국에 가서 그 라이벌을 대변하는 것은 동맹의 불신을 살 뿐이다.
정 장관은 2018년 청와대 안보실장 시절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비핵화 의지’를 미국에 전달해 북-미 정상회담을 이끌어낸 메신저 역할을 했다. 하지만 북-미 회담은 무참한 실패로 끝났고, 정 장관이 전달한 김정은의 진정성은 의심받고 있다. 정 장관은 이제 중국까지 참여하는 또 한 번의 북핵 이벤트를 꿈꾸는 듯하다. 하지만 어설픈 줄타기 외교로는 한국이 미중 갈등의 희생물이 될 가능성만 키운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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