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중앙은행인 연방준비제도(Fed)가 국채 등을 사들여 시장에 공급하던 유동성을 줄이는 ‘테이퍼링’(자산매입 축소)을 11월 개시할 것이라고 예고했다. 테이퍼링은 자연스럽게 금리 인상으로 이어지기 때문에 미국의 ‘제로(0)금리 시대’가 머잖아 끝난다는 의미다. 8월에 선제적으로 기준금리를 올린 한국은행의 행보에도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다.
연준은 그제 “(물가, 고용에서) 예상대로 진전이 계속되면 자산매입 속도 완화가 곧 정당화될 것”이라고 밝혔다. 제롬 파월 연준 의장은 “테이퍼링은 다음 회의 때 바로 올 수 있다”고 했다. 11월 초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 회의에서 테이퍼링 개시가 결정되고, 이르면 내년 하반기부터 금리 인상이 시작될 수 있다는 의미다. 테이퍼링은 미국 경제가 코로나19 충격에서 벗어난다는 뜻이어서 부정적인 것만은 아니다. 문제는 테이퍼링이 시작되면 위험성이 높은 신흥국의 금융시장 자금이 썰물처럼 빠져나갈 수 있다는 점이다. 글로벌 금융위기 때 풀린 유동성이 회수되기 시작한 2013년 실제 그런 일이 벌어졌다.
연준의 움직임과 관련해 기획재정부는 “변동성이 확대될 가능성이 있다”고 경고했다. 코로나19 사태 이후 원리금 상환을 계속 미뤄온 222조 원의 자영업자·소상공인 부채와 1800조 원이 넘는 가계부채 등이 저금리 시대가 끝날 때 한국 경제를 뒤흔들 수 있는 위험요인이다. 해외자금 유출을 막으려고 한은이 금리를 더 올리면 가계, 자영업자 이자부담은 급증한다.
천정부지로 오른 집값, 전셋값으로 촉발된 주택담보대출과 전세대출 증가세는 금융당국의 대출억제 조치에도 좀처럼 꺾이지 않고 있다. 전·월세 가격 급등과 생활고로 20대의 가계부채가 다른 세대보다 2배 넘는 속도로 늘어나는 등 취약계층의 빚 부담도 가중되고 있다. 다음 달엔 더 강력한 부채감축 대책도 나온다. 제2금융권 대출, 증권회사들이 주식을 담보로 빌려주는 ‘신용거래 융자’ 등에 대한 규제가 강화될 것으로 전망된다.
미국이 긴축의 속도를 높이면 전 세계의 주식, 가상화폐, 부동산 등 자산 가격의 거품은 예상보다 빠르게 꺼질 수 있다. 가계와 기업 모두 불필요한 대출, 무모한 투자를 경계하면서 본격화할 고금리 시대에 대비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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