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재발견/김범석]1이 사라지지 않는 카톡

  • 동아일보
  • 입력 2021년 9월 24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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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범석 서울대 혈액종양내과 교수
김범석 서울대 혈액종양내과 교수
한 사람이 세상을 떠나면 장례가 끝난 뒤에도 유가족이 해야 할 일은 많다. 사망신고도 해야 하고 은행계좌 정리도 해야 하고 유품 정리도 해야 한다. 짧건 길건 한 사람이 이 세상에 왔다 간 흔적을 지우는 일은 생각보다 복잡하고 어렵다. 때로 그 흔적이 너무 많아서 놀라기도 하고, 그 흔적이 별것 없어서 허무하기도 하다. 어쨌든 임종 후 남아 있는 고인의 삶의 흔적을 하나하나 지워가며, 때로는 저절로 없어지기를 기다리며, 혹은 지우지 못하면서 남은 자들은 떠난 자를 그리워한다.

휴대전화는 가장 정리하기 어려운 것 중 하나다. 사망신고를 하면 몇 달 뒤 고인의 휴대전화 명의가 자동으로 소멸되지만 요금 문제가 있어 통신사를 방문해 고인의 계정을 해지해야 한다. 휴대전화 계정 해지는 사망신고 못지않게 마음 아픈 일이다. 휴대전화가 서로를 연결해주던 기기이기 때문이다. 아무리 멀리 떨어져 있어도 이것만 있다면 서로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고 연결될 수 있었다. 그러므로 휴대전화 번호가 없어지고 명의와 계정이 없어진다는 것은 그 같은 연결이 끊어진다는 의미다.

유가족들은 때때로 가지 않을 것을 알면서도 고인에게 문자메시지를 보내곤 한다. “엄마, 잘 지내고 있어? 겨울이 와서 여기는 추워. 거기는 어때?” “여보, 오늘은 당신 생일이구려. 생일 축하하오.” “엄마, 그때 미안했어. 보고 싶어. 사랑해.” 답장이 오지 않을 문자메시지를 보내놓고 속으로 많이들 운다. 평소 같으면 아무렇지도 않게 왔을 답장이건만 이제는 짧은 메시지 한 줄 오지 않는 것을 보며 그제야 고인의 임종을 실감하게 된다.

카톡도 마찬가지다. 명의를 해지해도 계정은 사라지지 않는다. 엄마 없는 가족 단톡방을 새로 만들기 싫어서 쓰던 가족 단톡방을 그냥 쓰게 되지만 그 안에서 나누는 모든 대화에는 ‘1’이 계속 남는다. 가족 모두 그 숫자가 사라지기를 바라나 그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지워지지 않는 1을 바라보며 가족들은 한 사람의 부재를 실감하고 그를 그리워한다.

명의를 해지하고 나면 그 번호 소유자로 새로운 사람이 카톡에 뜰 때도 있다. 그러면 또 가족들은 한참 울게 된다. 그래서 어떤 이들은 고인의 휴대전화를 가족 명의로 변경하고, 그 번호를 유지하기도 한다. 고인과 끈이 영원히 끊어지는 것 같아 마음 아프기 때문이다. 이들 대부분은 이제 스팸 전화밖에 걸려오지 않는 휴대전화를 열심히 충전한다. 결국 이 작은 기기가 고인과 연결해주는 한 줄기 끈으로 남는다.

그렇게 오늘도 누군가는 울리지 않는 휴대전화와 1이 사라지지 않는 카톡을 바라보며, 고인의 빈자리를 실감하고 있을 것이다.

#삶의 재발견#별세#죽음#유가족#장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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